북한이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어업지도선을 타고 있다가 실종된 남측 공무원을 사살한 뒤 시신을 불태운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남측 민간인이 북측 지역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것은 2008년 7월 금강산에서 일어난 ‘박왕자씨 피격사건’ 이후 처음이다. 아무리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이 높다고 해도 비무장한 민간인을 사살한 것도 모자라 시신을 불태우기까지 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북한의 반인륜적 처사를 강력히 규탄한다. 정부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국방부는 이날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소연평도 남쪽 해상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선원 A씨가 북측 해역에서 사살됐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1일 낮 어업지도선에서 사라져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이어 A씨는 하루 뒤인 22일 오후 3시30분쯤 북측 해역에서 표류하다 북한 선박에 의해 포착돼 6시간이 지난 후 단속정을 타고 온 북한군의 총격을 받았다고 군은 설명했다. 북측은 하루가 넘도록 표류한 A씨를 구호하지 않은 것은 물론 6시간 동안 지켜보다 사살한 것이다. 우발적 대응이 아닌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A씨의 사망과 북한의 침묵으로 사태의 진상은 정확히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북한의 과잉 대응이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한 비상 조치로 보인다는 추정은 가능하다. 지난 7월 강화도 탈북민 월북사건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해 개성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특급 경보를 발령했다. 결국 코로나19 대응에 집착해 A씨에 대해 통상적인 체포-조사-송환 절차를 밟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측의 행위가 국제규범과 인도주의에 위배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청와대는 이날 북한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당연한 조치로, 북측은 이에 성실하게 응해야 한다. 그런데 북측은 진상규명을 위한 남측 전화통지문에 응답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다. 과거 박왕자씨 피격 사망 때도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는 등 남북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은 적이 있다. 북측이 남북관계를 파탄낼 요량이 아니라면 청와대 요구를 흘려들어선 안 된다. 북측은 이번 사건 경위를 성실히 설명하고 A씨 유해 반환 등 조치로 화답해야 한다. 또한 9·19군사합의가 파기되지 않도록 양측 모두 상황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A씨는 실종에서 총격 살해 확인 때까지 30여시간 동안 군 감시망에 포착되지 않았다. 또다시 경계망에 허점을 보인 경계태세는 물론 A씨가 사살될 때까지 아무 조치도 하지 못한 군 대응의 문제점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합참은 정황상 A씨가 월북을 시도했다고 밝혔지만 섣불리 판단할 일은 아니다. 당국은 면밀한 조사를 통해 남은 의문점들을 해소해야 한다. 불필요한 억측과 내부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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