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6일 오후(현지시간) 조 바이든 당선자의 대선 승리를 확정하기 위한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리던 워싱턴 의회 의사당에 난입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민주주의의 심장부 미 의사당이 미국인들에게 점령된 것은 건국 이후 처음이다. 이로 인해 의회 일정이 일시 중단되고, 시위대 4명이 목숨을 잃었다. TV를 통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이번 사태를 “반란”으로, 언론들은 ‘트럼프의 쿠데타 시도’로 규정하며 통탄했다. 이번 일로 취약한 미국 민주주의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과 권위에 타격을 받게 됐다.
민주주의 모범국을 자부하는 미국엔 치욕의 날로 기록됐다. 합법적 선거 결과를 폭력으로 뒤집으려는 시도는 결과에 대한 승복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당연히 트럼프에게 있다. 트럼프는 집권 4년은 물론 지난해 11월 대선 불복 선언 이후 트위터를 통해 음모론과 폭력을 선동하며 추종자를 부추겼다. 특히 이날 그가 보여준 행동은 국가 지도자로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모습이었다. 그는 이날 시위 참여를 독려했고, 심지어 시위대가 의회에 난입하기 전 백악관 앞 집회에 참석해 “절대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난입 후 시위대를 자제시켜 달라는 바이든과 행정부·의회 측근들의 요청에도 그는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로 퇴임을 2주 앞둔 트럼프에 대한 2차 탄핵론이 나오면서 미 정국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바이든 당선자는 이날 조지아주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2석 모두 승리해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하면서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했지만 ‘갈라진 미국’을 치유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번 사태는 제도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트럼프처럼 공동체보다 개인의 이익을 앞세운 국가 지도자가 가짜뉴스로 지지자를 선동하면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민주주의 제도도 흔들린다는 것을 눈앞에서 입증했다. 우리도 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민주주의를 유린당한 경험이 있다. 미국의 모습을 보면서 화합보다는 분열을 정치적 동력으로 삼은 정치 지도자와 극렬 지지자를 막지 못하면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제도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모두가 다시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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