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가 27일 택배사들의 합의 위반을 이유로 29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택배 분류작업을 택배사가 전담하기로 합의한 지 엿새 만이다. 당사자들이 양보와 타협으로 힘들게 이룬 합의가 무산 위기에 놓여 안타깝다. 설연휴를 앞두고 총파업에 따른 택배대란은 피해야 한다.
택배노조는 사회적 합의 이후에도 택배 현장이 달라지지 않은 점을 총파업 이유로 들며 택배사에 즉각적인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택배사와 노조는 지난 21일 사회적 합의기구의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에서 ‘분류작업의 비용과 책임을 회사가 진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에 택배회사들은 설연휴 전까지 6000명을 분류작업에 투입하기로 하고 4800명을 지금까지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합의문에 따라 거래구조 개선작업 이후 분류인력을 추가로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이런 정도로는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분류작업 투입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문제는 합의 이행 속도를 둘러싼 갈등인 셈이다.
노조는 또 파업 철회의 조건으로 노사협정서 체결을 요구했다. 노사가 직접 만나 협상을 하는 등 원청인 택배사가 택배노동자들을 단체교섭권을 가진 노조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택배기사는 대부분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택배사나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특수고용직 종사자다. 택배사로서는 즉각 수용하기 어려운 점도 있는 게 현실이다.
설연휴를 앞두고 택배회사와 노조 간 갈등에 시민들은 불안하다. 어렵사리 맺은 사회적 합의가 이렇게 깨져서는 곤란하다. 우선 택배사들은 분류작업을 전적으로 책임지기로 한 합의를 최대한 지켜야 한다. 사측은 강제성이 떨어지는 사회적 합의라는 이유로 분류인력 투입 등을 지연해서는 안 된다. 설연휴 택배 특수기에 돌입한 상황이라 분류인력 투입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택배기사들은 또다시 살인적인 분류작업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조가 노사협정서 체결 요구 등 새로운 조건을 내건 것도 과도하다. 이런 문제는 추가 합의를 통해 하나씩 풀어나가는 게 합리적이다. 노사 모두 시민들이 왜 ‘늦어도 괜찮아’ 캠페인에 동참하며 배송 지연까지도 감수하려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택배노사의 사회적 합의를 중재한 정부와 정치권도 총파업을 막는 데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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