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과 청나라 간 아편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차(茶)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청으로부터 차를 사들일 결제대금 은이 절대 부족했다. 그래서 영국이 고안한 것이 인도를 끼워넣은 ‘삼각무역’이었다. 대중국 무역 독점권을 가진 동인도회사가 영국의 모직물을 인도에 수출하면, 인도는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영국이 차를 가져오는 식이다. ‘차의 정치경제학’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차가 다시 국제정치의 중심에 섰다. 태국과 중국 간 소셜미디어(SNS) 전쟁이 계기였다. 태국의 한 유명인이 트위터에 홍콩을 국가로 묘사한 이미지를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중국 누리꾼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한 처사라며 강력 반발했다. 급기야 두 나라 간 갈등에 홍콩과 대만 누리꾼들이 태국 편에 가세하면서 반중국 운동으로 번졌다. 이를 계기로 태국과 홍콩, 대만 등 세 나라 누리꾼들이 결성한 것이 ‘밀크티 동맹’이다. 차를 즐겨 마시는 중국과 달리 세 나라가 밀크티를 마신다는 공통점에 착안해 만든 이름이다. 밀크티 동맹은 지난해 인도와 중국 간 국경분쟁으로 인도 누리꾼까지 가세하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2월 마지막 날, 미얀마에서 군경의 총격으로 시위대 최소 18명이 숨졌다. 쿠데타 발발 한 달 만의 최악의 유혈사태다. 그러자 홍콩과 태국 방콕, 대만 타이베이에서 청년들이 미얀마 시민 지지 거리시위를 벌였다. SNS상에서만 연대의 뜻을 표출하던 밀크티 동맹이 오프라인으로 활동무대를 넓힌 것이다. 반군부 시위에 나선 미얀마 시민들은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절감하던 터였다. 특히 쿠데타 세력을 강력 비난한 서방국가들과 달리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시민의 안위는 도외시한 채 미얀마의 전략적 가치만 따지고 있다는 것이다.
밀크티 동맹이 미얀마 사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외롭게 투쟁하는 미얀마 시민에게 밀크티 동맹이 최대 지원군인 것은 틀림없다. 밀크티 동맹이 만약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켜내고, 나아가 반중 연대라는 한계까지 넘어선다면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운동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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