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아이콘, 노동자의 대통령,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 그리고 부패한 정치인.’ 그의 이름 뒤에는 많은 수식어가 따른다. 21세기 첫 10년을 지배한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76)의 이력에는 질곡의 브라질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가난이 구두닦이 룰라를 노조활동에 눈뜨게 했고, 노조지도자가 되어서 군부독재에 맞선 경험은 그를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했다. 3전4기 끝에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보우사 파밀리아’ 같은 빈곤층 보호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쳐 세계적인 정치인으로 도약했다. 퇴임 직전 지지율 87%만큼 그의 8년 집권을 잘 보여주는 척도는 없을 터이다. 그런 그가 퇴임 8년 뒤 감방에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룰라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패였다. ‘세차작전’으로 불린 대대적인 부패척결 운동은 브라질 사회에 오랫동안 뿌리박힌 부패상을 드러내며 정계를 뒤집어놓았다. 하지만 피해는 유독 집권 노동자당에 집중됐다. 우파의 끈질긴 반정부 공세와 맞물린 결과였다. 룰라의 후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조차 ‘정부회계조작사건’으로 2016년 8월 탄핵됐다. 불똥은 호세프의 후견인을 자처했던 룰라에게도 튀었다. 대형 건설업체로부터 아파트와 110만달러 수수 혐의로 기소된 그는 2017년 7월 9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이듬해부터 복역하다 2019년 11월 석방됐다. 자신의 대선 3선과 노동자당 재기의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뒤였다. 어쩌면 대통령 3선 연임 규정이 있었더라도 그의 몰락은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룰라가 귀환했다. 대법원 판사가 지난 8일 그의 부패 혐의 실형선고에 무효 조치를 내림에 따라 정계 복귀는 물론 내년 대선 출마의 길이 열렸다. 이날 판결로 브라질의 2022년 대선은 사실상 시작됐다. 그의 귀환이 달갑지 않은 이는 룰라의 복역으로 2018년 대선에서 득을 본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다. 전날 발표된 IPEC 여론조사에서 보듯 현재 풍향계는 룰라에 유리하다. 하지만 보우소나루와 룰라 모두 코로나19로 양극화가 커져가는 브라질 사회에서는 기피인물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을 압도할 제3의 후보가 나타나지 않는 한 1년7개월 뒤 두 사람의 대결은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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