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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샤를리 에브도의 '도발'(210315)

정치만평의 생명은 풍자다. 그래서 만평 속 정치인은 사실과 달리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거나 과장되기 일쑤다. 한 컷의 만평엔 촌철살인하는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어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반대로 논란을 불러 지면(온라인)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2019년 4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다룬 뉴욕타임스의 정치만평이 그랬다. 트럼프를 유대인 모자 야물크를 쓴 ‘맹인’에, 네타냐후 총리를 안내견에 빗댄 내용이었다. 반유대적이라는 항의가 쏟아지자 그해 7월1일자부터 정치만평을 없앴다.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 조롱 만평으로 유명하다. 무슬림은 무함마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걸 신성모독으로 여기며 금기시한다. 그럼에도 2006년 2월 시작된 이 매체의 무함마드 조롱은 멈출 줄 모른다. 심지어 2015년 1월7일엔 파리 본사가 이슬람 극단주의 형제의 공격을 받아 12명이 사망하는 테러까지 일어났다.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에는 성역이 없다. 무함마드뿐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 정치 지도자들이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이번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13일 여왕이 왕세손 해리의 부인 메건 마클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는 만평이 온라인에 미리 공개돼 논란을 불렀다. 최근 왕세손 해리-마클 부부가 인터뷰하면서 왕실을 비난한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이 만평은 지난해 5월 백인 경관에게 같은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떠올릴 뿐 아니라 ‘여왕=백인 경관, 마클=플로이드’라는 이분법적 비유도 모독감을 주기 충분했다. 샤를리 에브도 입장에서 보면 영국 왕실과 모든 특혜를 버린 왕세손 부부의 갈등은 흥미로운 풍자 소재다. 더구나 여왕도 비판의 대상일 뿐이다.

 

여왕 풍자 논란은 샤를리 에브도 풍자가 늘 던지는 질문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풍자에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는 점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옹호나 반유대주의 같은 혐오발언과 타 종교에 대한 공격 등이다. 샤를리 에브도가 아무리 표현의 자유를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여기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