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청해부대의 문무대왕함 승조원 301명 중 247명이 코로나19에 걸린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82%가 감염된 것이다. 먼 곳의 망망대해에서 홀로 작전을 수행 중인 함정에서 거의 모든 승조원이 집단감염됐다니 충격적이다. 해외 파병된 장병들의 안전을 위해 국방당국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무대왕함 집단감염 사태는 파병 후부터 사태 발생 후 대응까지 총체적으로 부실투성이다. 해외 파병부대에 대한 감염병 대응 매뉴얼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해외 파병부대 우발사태 지침서’에 감염병 위기관리 및 대처 부분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국가위기관리 매뉴얼에도 감염병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합참은 지난해 6월 해외 파병부대 코로나19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하달했다면서도 내용은 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내용을 떠나 사태가 이 지경이라면 그 매뉴얼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문무대왕함이 군의 백신 접종계획에서 제외된 것도 의문이다. 군 당국에 이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백신 수송과 유통 문제 등이 어렵다고 판단돼 백신을 공급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문무대왕함의 대응이다. 첫 유증상자가 나온 이후 최초 확진자 6명이 확인되기까지 11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초기 대응만 잘했어도 이런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나아가 국내외의 앞선 함정 감염 사례들이 전혀 참고되지 않은 점도 이해할 수 없다. 지난해 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는 함장의 선제적인 감염자 하선 조치를 해군 지휘부가 반대해 집단감염으로 이어졌다. 불과 3개월 전에는 해군 상륙함 고준봉함에서 승조원 약 39%가 감염됐다. 일선 함정 지휘관은 물론 해군 지도부의 방심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감염병 대응에 허점을 드러낸 합참 등 군 지휘부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청해부대원들은 이날 저녁 수송기 2대에 타고 아프리카를 떠나 한국으로 향했다. 3밀(밀접·밀집·밀폐) 환경의 함정 내에서 지낸 점을 고려하면 음성 및 판정 불가 인원에서도 추가 확진자가 나올 수 있다. 장병 도착 즉시 재검사로 감염 여부를 확인, 신속히 치료해야 함은 물론이다. 더불어 이번 사태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책임자 문책도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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