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친환경’은 절대선이다. 그래서 친환경을 의미하는 ‘그린(green)’이 붙으면 무엇이든 각광받는다. 그런데 ‘그린’이 붙어도 부정적 의미를 지니는 말들이 있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이 대표적이다. 친환경과 거리가 먼데도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뜻한다. 기업이 제품 생산 중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는 축소하고 재활용 같은 일부만을 부각시키는 행위로, 명백한 소비자 기만행위다.
녹색 식민주의(green colonialism)도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선진국이 후진국의 토지나 노동력 등을 착취해 높은 생활기준을 성취하는 것을 이른다. 개발도상국의 식량생산력의 급속한 증대 또는 이를 위한 농업개혁을 일컫는 녹색혁명, 선진국의 독성 살충제와 플라스틱 폐기물 등의 후진국 수출, 탄소배출권 거래 등이 해당된다. 녹색 식민주의가 반드시 국경을 넘는 것만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시설을 지으면서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거나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과거 식민 종주국이 피지배국에 하던 것처럼 국가나 기업이 원주민과 갈등하는 경우다.
이런 녹색 식민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 나왔다. 노르웨이 대법원이 11일 원주민 사미족 목축업자들이 풍력발전 터빈 건설과 관련해 제기한 소송에서 사미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풍력발전사 측은 재생에너지를 활성화하기 위해 사미족이 거주하는 지역에 풍력 터빈 151개를 설치했다. 그런데 사미족은 이 터빈 소리 때문에 순록들이 이동에 지장을 받고 잘 먹지도 못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회사 측은 어렵게 설치한 터빈 151개를 해체해야 할 형편이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아무리 기후위기 대응이 시급해도 원주민 등 소수집단의 피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구상에는 지금 사미족과 같은 원주민이 87개국에 걸쳐 5000여종이 살고 있다. 이들이 사는 보호지역은 지구 면적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들 원주민은 보존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이고 권리마저 기업이나 환경단체에 의해 축소되기 일쑤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하지만 그것은 원주민들과의 협력과 기후정의,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에 기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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