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3월13일 새벽(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퀸스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단순 살인사건이었지만 대반전이 일어났다. 2주 뒤 보도된 뉴욕타임스의 ‘살인을 목격한 38명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기사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범행을 목격했으나 아무도 피해자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미 사회가 경악했다. 아무도 신고하지 않은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의문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터네이였다.
두 사람은 1968년 심리를 알아보는 한 실험을 했다. 참가자들을 대기실에 두고 벽에 뚫린 통풍구를 통해 연기를 들여보냈다. 참가자들이 얼마나 빨리 신고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혼자 있는 사람은 2분 안에 신고했지만 참가자가 여러 명일 경우 신고 비율도 낮고 시간도 길었다. 두 사람은 ‘방관자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도 한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돕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제노비스 사건의 경우 흔한 부부싸움일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범죄라면 누군가 신고하겠지 하며 서로 미루는 바람에 일어난 비극이었던 것이다.
제노비스와 판박이인 사건이 지난 13일 밤 미 필라델피아 교외 통근열차 안에서 일어났다. 한 여성이 노숙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열차 안에는 승객들이 있었지만 약 8분간 여성이 공격당하는 동안 아무도 나서지도 않았다. 심지어 일부 승객은 성폭행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어서 경찰이 조사 중이라고 한다.
<버스 44>라는 11분짜리 단편영화가 있다. 중국 시골에서 44번 버스를 모는 여성 운전사가 승객으로 가장한 2인조 강도에게 돈을 뺏기고 성폭행을 당하는데도 승객들이 도와주지 않아 고의로 버스를 추락시켜 전원 사망한다는 내용이다. 운전사는 자신을 도우려 한 남자 한 명만 강제로 하차시켜 목숨을 구해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2001년 중국계 미국인 감독이 제작했다. 방관자에게 보내는 최후의 경고 같다. 방관자는 흔하고 착한 사마리아인은 드문 시대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방관자로 남으려 한다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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