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을 누비는 것은 정규군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국제의용군이 모여들고 있다. 정부 요인과 시설을 보호할 목적으로 합법적으로 계약한 군사그룹도 있다. 이른바 민간군사기업(PMC) 직원으로 불리는 용병이다. 민간인 신분이지만 정부를 대신해 전투도 수행한다. 특수부대(네이비실) 출신의 에릭 프린스가 1996년 설립한 미국의 블랙워터가 대표적이다. 블랙워터(현 아카데미)는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중앙정보국(CIA)과 국무부 등 연방정부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급성장했다. 2007년 수도 바그다드에서 민간인 17명을 총격 살해하는 등 악명도 얻고 있다.
미국에 블랙워터가 있다면 러시아에는 바그너그룹이 있다. 러시아 군정보기관 정찰총국(GRU) 소속 특수부대 출신인 디미트리 우트킨이 2014년 설립했다. 당사자 모두 부인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억만장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자금을 대는 푸틴의 사병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 이름은 우트킨이 동경하는, 히틀러도 애호했던 독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땄다고 한다. 바그너그룹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크림반도) 강제병합 때다. 당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친러 정부를 수립한 것을 비롯해 리비아와 말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모잠비크, 시리아 등지에서 활동했다.
바그너그룹 직원 1000여명이 우크라이나 동부에 배치됐다고 영국 국방부가 밝혔다. 지난달 말에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각료를 암살할 목적으로 바그너 조직원 400여명이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파견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바그너그룹이 이번 전쟁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두 가지 점이 우려된다. 하나는 민간인 대량학살이다. 바그너그룹은 블랙워터처럼 인권침해와 전쟁범죄로 악명을 떨쳐왔다. 다른 하나는 용병 간 대리전이다. 바그너그룹의 전쟁 참여가 블랙워터의 개입을 부르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블랙워터가 러시아와 싸우겠다며 파견을 요청했지만 미 정부가 거부했다고 한다. 전쟁으로 인명이 희생되는 것도 안타까운데 돈벌이를 위한 참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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