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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마리우폴 봉쇄(220408)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1941년 6월22일 소련을 침공한다. 그해 9월 초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진격한 독일군은 도시를 점령하는 대신 봉쇄를 선택한다. 악명 높은 ‘레닌그라드 봉쇄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주민들을 굶겨서 항복시키는 전술로, 1944년 1월27일까지 872일 동안 전체 주민의 3분의 1인 100만명이 희생됐다. 기아뿐 아니라 독일군의 계속된 공습과 포격, 괴혈병, 혹독한 추위 등이 주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은 동물은 물론 의약품과 아교풀, 가죽 등을 먹어가며 연명했다. 심지어 인육을 먹는 비인간적인 행위까지 강요함으로써 군사적 봉쇄작전의 잔혹함을 보여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현대판 레닌그라드’로 만들고 있다. 지난달 초 러시아군에 포위된 후 한 달 만에 마리우폴이 유령도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음식과 식수, 의약품 공급은 물론 난방, 전기, 전화가 끊겼다. 도시 기반시설은 90%가 파괴됐다. 마리우폴 시장은 러시아군의 봉쇄와 공격으로 한 달여 동안 주민 5000명 이상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중순 러시아어로 ‘아이들’이라고 써놓은 극장 건물을 공격한 러시아군의 만행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전쟁 전 43만명이던 주민 대부분은 떠났지만 여전히 12만~16만명이 고립된 채 인도주의적 위기에 놓여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마리우폴의 상황을 레닌그라드 봉쇄에 비유했다. 히틀러는 끝내 레닌그라드를 함락시키지 못했다. 무자비한 봉쇄도 주민들의 항전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걱정스러운 것은 마리우폴 시민들이다. 마리우폴은 친러파들이 장악한 돈바스지역과 크름반도(크림반도)를 육지로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러시아가 반드시 장악하려는 지역이다. 마리우폴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카를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했다. 80년 전 비극이 반복되고, 가해자가 나치에서 피해자였던 러시아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희극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히틀러의 실책을 생각해야 한다. 뼈아픈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는 자에겐 파멸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