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지난 30일 공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 당초 교육목표에 반영하려 한 ‘노동’ 관련 내용이 사라졌다. 그 결과, 노동이라는 말은 직업계고 교과과목 ‘노동인권과 산업안전보건’에만 나올 뿐 그 이외에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2022 교육과정 교육목표에 ‘일과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반영하겠다는 교육부의 약속은 허언이 됐다. 친기업·반노동 기조를 앞세운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교육부의 눈치보기가 해도 너무하다.
지난해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에 일과 노동의 의미와 가치가 포함되자 시민사회는 환영했다.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체계적으로 노동교육을 실시한다면 노동존중 사회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를 비롯해 사회 각계가 부단히 노력한 결과였다. 이는 곧 교과과정에서 노동교육을 실시하는 것에 전 사회가 합의했다는 의미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이런 방침을 삭제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다른 것은 다 선진국을 따라가자고 하면서 이런 것은 왜 외면하는지 윤석열 정부의 처사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학교의 노동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일찍부터 노동에 대한 가치를 깨닫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지켜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학교 내 노동교육은 미미한 수준이다. 직업계고만을 대상으로 하던 노동교육을 초·중·고교 정규교육과정에 반영한 것은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이후의 일이다. 중·고교생의 8.5%(2019년 기준)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노동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청소년과 청년들은 노동자의 기본권리조차 모른 채 죽음으로 내몰렸다. 구의역의 김군(2016년)과 김용균씨(2018년), 이선호씨(2021년) 등의 비극을 언제까지 마주해야 하는가.
교육부 관계자는 “기존 내용과 학교급별 발달 단계 등을 고려해 교육목표에 녹여 넣었다”고 밝혔다.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학교에서 노동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올해 말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을 확정한다. 교육부는 그때까지 투명하게 의견 수렴을 진행해 노동교육 강화라는 국민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교과과정까지 비트는 교육부는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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