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일 오전 1시30분쯤 경북 성주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기지에 불도저, 유류차 등 장비 10여대를 기습적으로 반입했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지난해 5월 사드 기지 내 장병 생활관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한 이후 휴일에 장비를 기지로 들여온 것은 처음이다. 경찰과 국방부는 당초 ‘주말 (장비 등 물품) 반입은 없다’고 사드 반대 주민·단체에 말했으나, 약속을 깨고 이날 밤 기습적으로 물품을 들여왔다. 다행히 충돌은 없었지만, 향후 양측 간 갈등과 충돌이 우려된다.
이번 조치는 윤석열 정부가 예고한 ‘사드 기지 정상화’의 일환이다. 군당국은 지난해부터 사드 기지 내 미군들이 시설 미비 등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며 생활관 개조를 추진해왔다. 매주 평일에 2~3차례씩 하던 물품 반입 횟수를 현 정부 출범 뒤인 지난 6월부터 5회로 늘렸다. 이번 조치는 반입 횟수를 주 7회까지 늘림으로써 기지에 대한 지상 접근권을 보장하고, 궁극적으로는 미군이 필요하면 언제든 물류나 유류, 인력이나 차량 등을 수송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사드 기지에 대한 일반환경영향평가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사전조치로 그동안 미뤄져온 지역주민들과의 협의회를 구성했다.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게 되면 성주 사드 기지는 본격적으로 군사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반발을 부르고 있다. 사드 반대 단체들은 “5일부터 다시 투쟁집회를 열고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드 반대 주민·단체 관계자 수백명은 지난 3일 현장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정부가 사드 기지의 지상 접근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힌 뒤 처음 열린 집회였다. 그런데 경찰과 국방부 측은 ‘주말 내 작전은 없다’며 이들을 안심시킨 뒤 뒤통수를 쳤다. 이런 방식으로 기지를 정상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더구나 정부는 환경영향평가 협의회 주민대표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아 주민들이 당국이 무슨 꼼수를 쓰지 않나 의심하고 있다.
2017년 4월 미군의 사드 배치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그런 갈등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정부는 사드 기지를 정상화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사드 기지를 정상화하고자 한다면 그 목표를 분명히 하고, 과정도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드를 추가로 배치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약속도 믿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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