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영국과 미국 등 3개국 순방외교가 성과는 고사하고 사고로 점철되면서 외교라인에 대한 문책론이 비등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3일 그 책임을 물어 박진 외교부 장관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의 즉각 경질을 요구했다. 준비에서부터 결과까지 전례 없이 총체적 무능을 보인 외교라인을 문책하는 것은 당연하다.
윤 대통령의 순방 결과는 애초 약속이나 기대와 거리가 멀 정도로 참담하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은 불발됐다. 조문 일정을 세세히 챙기지 못해 먼 길을 가 놓고도 여왕을 참배하지 못하는 한심한 일이 벌어졌다. 늦게 성사됐다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은 3차례 환담으로 끝났다. 바이든 대통령이 바쁜 일정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전에 약속된 정상회담이 취소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니 국내 기업들이 크게 기대했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에 대한 구체적 성과가 나올 리가 없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은 30분간 이뤄졌지만, 구걸 외교 논란을 불렀다. 일본은 “(정상회담이) 흔쾌히 합의됐다”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표 직후부터 약식회담 직전까지 회담 성사를 부인했다. 결국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가 주관하는 국제회의 행사장까지 찾아가 30분간 만났다. 그나마 한국 측은 ‘약식회담’을 했다고 했지만, 일본 측은 ‘간담’이라고 낮춰 불렀다. 의제를 놓고 협의한 정식 회담이 아니란 뜻이다. 만남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가 무색하다.
이번 외교 실패에서 가장 책임이 두드러지는 당사자는 김태효 1차장이다. 김 차장은 최종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은 정상회담 일정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망신을 자초했다. 더구나 외교안보실의 실세는 김 차장이라는 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기획하고 실행한 사람도 김 차장일 수밖에 없다. 김 차장의 상관인 김성한 실장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 김 차장이 놓친 부분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영국에서의 의전 실수 등은 외교부를 이끄는 박진 장관이 책임져야 한다.
외교 라인의 무능은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지난 8월 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방한 시 윤 대통령 ‘패싱 사건’ 때도 불거진 바 있다. 윤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 공직생활을 한 터라 외교안보에 문외한이다. 무능한 외교 라인의 보좌를 받아서는 미·중 대결 등 국제정세 대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 윤 대통령은 귀국하는 대로 안보실과 외교부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교 실패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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