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없었고 잔물결만 일었을 뿐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 한줄평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공화당의 압승이라는 ‘레드 웨이브’는 물거품이 됐다. 공화당은 상원 탈환에 실패했다. 하원조차 겨우 몇 석만 앞설 공산이 크다. 선거 전 떠들썩했던 압승 예측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보통 중간선거는 집권당의 무덤으로 불린다. 평균적으로 하원 28석, 상원 4석을 잃는다고 한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하원 54석을 잃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하원 63석, 상원 7석을 공화당에 넘겨줬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사실상 공화당의 패배라 할 만하다.
공화당 패인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부정 주장과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의 임신중단권 뒤집기 판결에 대한 젊은 유권자(18~29세)의 반발 등이 지목된다. 공화당의 패인은 곧 민주당 승리의 원동력이다. 특히 젊은 유권자의 투표 열풍이 ‘레드 웨이브’를 잠재운 일등공신이었다. 젊은층의 중간선거 투표율은 약 27%였다. 경합주의 경우 31%에 달했다. 1970년대 이후 중간선거 투표율로는 2018년(약 31%)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젊은층의 위력은 2018년 중간선거, 2020년 대선에서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함으로써 증명된 바 있다. 젊은 유권자 3명 중 2명(63%)이 민주당 지지자였다. 35%인 공화당의 약 두 배다. “젊은층이 민주당을 구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유다. 이들이 없었다면 ‘레드 웨이브’는 현실화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임신중단권 뒤집기에 대한 반발이 컸다. 출구조사 결과 임신중단권(27%)은 인플레이션(31%)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이슈였지만 선거 결과는 달랐다. 총기사고, 기후변화 등과 함께 젊은층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번 패배로 2018년 중간선거, 2020년 대선에 이어 3연패를 기록했다. 선거의 ‘마이너스의 손’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를 지지하는 대선 부정론자가 하원의원 선거에 300명가량 출마해 약 80명이 당선됐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 책임론 또한 부상하고 있다. 중간선거는 두 가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트럼프의 대선 부정 주장이 미국 내에서 소수 의견이라는 점과 그가 선거에서 공화당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착각이다. 자신을 공화당에서 ‘대체 불가 존재’로 여긴다. 그가 중간선거 일주일 만인 15일 2024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을 보면 분명하다. 중간선거 패배 책임론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과대망상이자 자기도취의 극치다. 현실적으로 봐도 그렇다. 그의 최대 경쟁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중간선거 이후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7%포인트 앞섰다. 한 달 전 10%포인트 차 열세를 극복한 대역전이다. 차기 대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만 트럼프의 재도전이 꽃길이 아님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죽다 살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든은 상원 승리를 굳힌 지난 13일 “민주주의를 위해 좋은 날”이라고 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우리의 의제와 우리의 성취, 미국과 국민을 위한 승리”라고 자평했다. 착각이다. 바이든이 강조한 민주주의 위협론이 막판에 주효했던 것은 사실이다. 바이든의 지지율이 41%에 불과한데도 승리한 것은 단연코 젊은층 덕이다. 바이든과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을 이들이 대신한 것이다. 민주당은 무임승차했을 뿐이다. 민주당의 촉망받는 3선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이번 선거에서 젊은층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사실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승리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2024년 대선 후보에 대해서도 새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번 중간선거 출구조사에서 유권자의 3명 중 2명(68%)이 바이든의 재출마를 반대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바이든의 대선 재출마 여부는 내년 초 결정된다. 바이든의 재출마는 트럼프처럼 민주당에는 장애물, 공화당에는 축복이 될 수 있다.
중간선거에서 미국인의 민심은 드러났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변화에 대한 갈구다. 2024년 대선은 기후변화, 총기규제같이 젊은층의 생사가 걸린 의제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젊은층 눈에는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 성에 차지 않는 후보일 수 있다. 민심을 읽을 수 있고, 자신만이 이길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쪽이 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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