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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경향의 눈

[경향의 눈30] 푸틴 손에 달린 ‘다모클레스의 핵검(核劒)’, 막을 이는 바이든뿐(221020)


“우리는 사고나 오판, 광기에 의해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가장 가느다란 실에 매달린 다모클레스의 핵검(核劒) 아래에 살고 있다. 전쟁 무기들이 우리를 없애기 전에 그것을 없애야 한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1년 유엔 총회에서 한 연설의 일부다. 연설 속 ‘다모클레스의 핵검(a nuclear sword of Damocles)’은 기원전 4세기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왕 디오니시우스와 신하 다모클레스의 일화에서 유래된 ‘다모클레스의 칼’을 빗댄 말이다. 디오니시우스는 권력과 부를 부러워하는 다모클레스를 화려한 잔치에 초대해 한 올의 실에 매달아 놓은 칼 밑에 앉혔다. 권력자의 운명이 언제 떨어질 줄 모르는 칼 밑에 있는 것처럼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케네디는 ‘다모클레스의 칼’을 인용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핵전쟁 위험을 경고했다. 이 구절은 2년 뒤 “핵 강국들은 상대방에게 굴욕적인 후퇴냐 핵전쟁이냐의 선택을 하도록 하는 대립을 피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냉전 시절 미·소 간 핵전쟁을 피하려 애써온 케네디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다모클레스의 핵검’ 경고 1년 만에 케네디는 핵전쟁 위기 대처 능력을 보여줄 시험대에 올랐다.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핵전쟁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사건이다. 미국이 이탈리아와 터키(현 튀르키예)에 모스크바를 겨냥한 탄도미사일을 배치한 것이 발단이 됐다. 구소련이 쿠바에 백악관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 핵미사일을 맞배치하면서 위기는 고조됐다. 케네디는 “위험에 직면해야 한다면 회피하지 않겠다”면서도 구소련과의 대립은 피했다. 결국 양측이 물밑 협상으로 미사일 기지 철수에 합의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는 해소됐다. 이 사건은 극소수의 손에 달려 있는 핵무기의 위험성은 물론 외교적 해법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하지만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핵전쟁 위험은 피할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세계가 60년 만에 ‘푸틴발 핵전쟁 위험’에 처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전술핵무기 카드를 꺼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핵 아마겟돈’ 가능성을 언급하며 위기를 고조시켰다. 마치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미치광이 전략’을 보는 듯하다. 백악관이 “핵 전략태세에 변화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미·러가 각각 5500기와 60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라 핵전쟁 공포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러 간 대리전이나 다름없다. 늘 그렇듯 전쟁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러시아가 고전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마찬가지로 푸틴이 전술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이유도 없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쿠바 미사일 위기보다도 더 엄중하다고 한다. 상황을 관리할 조건의 부재 탓이다. 당시 양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흐루쇼프 서기장은 독단적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과 협의해야 했다. 지금 푸틴을 견제할 세력은 사실상 없다. 과거와 달리 외교적 해결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미·러 간 대화가 전혀 없다. 아무리 상황 관리를 한다 하더라도 사소한 오해나 오판, 우발적인 사고가 핵전쟁 위기를 부를 수 있는 형국이다. 케네디가 경고한 ‘다모클레스의 핵검’이 인류의 머리 위로 떨어질 수 있는 조건들이 갖춰져 있는 셈이다.

푸틴을 막을 수 있는 이는 바이든뿐이다. 그런데 바이든은 핵전쟁 공포만 고조시킨 채 손을 놓고 있다. 오히려 케네디의 경고를 조롱하듯 푸틴을 ‘굴욕이냐, 핵전쟁이냐’ 양자택일 궁지로 내몰고 있다. 60년 전과 같은 요행을 바라는 걸까. 푸틴발 핵전쟁 위험은 과거처럼 해소될 수도 있다. 하지만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모든 정치생명을 건 걸 감안하면 소극적 태도로는 어림도 없다. 지금 바이든에게 필요한 것은 케네디의 지혜다. 외교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러시아와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평화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다. 핵전쟁 위험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핵무기 감축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행히 바이든은 ‘핵 아마겟돈’을 말하면서도 푸틴을 위한 ‘출구’를 열어놨다. 취임하면서 대외정책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도 외교였다. 협상은 결코 굴복이 아니다. 바이든이 되새길 케네디의 명언이 있다. “두려움 때문에 협상하지는 말자. 그렇다고 협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