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처리된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올해보다 5조원 이상 삭감됐다. 여야가 막판에 전세임대융자사업 예산 6630억원을 되살렸지만 무주택 서민과 취약계층의 안정적 주거 보장이라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의 취지와는 한참 멀다. 무엇보다 삭감액의 약 80%가 지난여름 반지하 수해 참사 대책으로 제시된 예산이라 안타깝다.
삭감된 대표적인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매입임대주택 예산(3조여원)과 전세임대주택 예산(1조여원)이다. 지난 8월 초 서울 관악구 반지하 가구에서 수해로 발달장애인 가족 3명이 숨지면서 두 예산은 반지하 가구 이전을 위한 주거대책의 핵심으로 제시됐다. 당시 현장을 둘러본 윤석열 대통령은 “노약자·장애인 등의 지하 주택을 비롯한 주거 안전 문제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보다 5조여원이 삭감된 예산안을 편성했다. 비극을 막겠다고 나설 때는 언제이고, 이제와 나 몰라라 하니 어이가 없다. 여기에 소득 하위 40% 계층에 공급되는 국민임대주택과 행복주택, 영구임대주택 예산도 줄줄이 삭감됐다.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공공분양주택융자 예산은 1조3955억원으로 올해보다 1조원 이상 늘어났다. 청년·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는다고 하지만 저소득층이 부담하기에는 분양가가 높아 ‘금수저 청년’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의 일차적 책임은 공공임대에서 공공분양 공급으로 정책을 선회한 정부 탓이 크다. 정부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늘린 공공전세사업을 종료했을 뿐이라며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지만 예산 삭감의 피해는 주거 취약계층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안이 나온 이후 줄곧 삭감 예산 확충을 주장해온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도 정부·여당에 끌려다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여야는 공공분양주택융자 예산을 정부안대로 지켰고, 공공임대 예산 6630억원을 되살렸다고 자랑하니 무책임하다. 더욱이 6630억원은 5조원이 넘는 전체 삭감액의 13%에 불과하고, 공공이 보유하고 있는 임대주택이 아니라 민간임대주택의 보증금 지원형인 전세임대주택 융자 예산이다. 한마디로 취약계층 주거환경 개선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여당이 공공임대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것은 반지하 정책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와 여야는 내년 추경을 통해 삭감된 공공임대주택 예산안을 복원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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