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어산지 죽이기’인가.
내부 비리고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에 관한 기밀문서를 잇달아 폭로하면서 인터넷 시대의 최고 언론인으로 찬사받던 어산지가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지난 22일 그가 폭로한 이라크전 기밀 39만여건을 계기로 그동안 위키리크스 문서들을 앞다퉈 보도해온 언론들은 그가 보여주려 한 전쟁의 진실보다는 과거 해커로서의 전과 사실, 성폭행 혐의, 동료와의 갈등 등 부정적 이미지를 집중 부각했다.
선봉에는 뉴욕타임스가 있다. 미국의 압력을 받고 있는 각국 정부가 그 뒤를 받쳐주는 형국이다.
왜 이들은 ‘어산지 죽이기’에 나섰을까.
뉴욕타임스의 지난 23일자 1면을 보자. 신문은 새로 드러난 이라크전 민간인 학살 내용과 함께 어산지를 조명한 기사를 실었다. ‘악명으로 달려온 위키리크스 설립자 도망 중’이라는 기사다.
뉴욕타임스의 지난 23일자 1면을 보자. 신문은 새로 드러난 이라크전 민간인 학살 내용과 함께 어산지를 조명한 기사를 실었다. ‘악명으로 달려온 위키리크스 설립자 도망 중’이라는 기사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마치 범죄자를 연상시킨다. 기밀 공개 닷새 전인 지난 17일 어산지와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알자지라, 르몽드 등과 함께 위키리크스로부터 미리 문서를 받아 분석 중이었다.
기사는 악의로 가득 찼다. “줄리안 어산지는 도망자처럼 움직인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기사는 어산지를 사악하고 고집불통이고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인물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1995년 해커 혐의로 구속된 사실을 비롯해 그가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 정황들을 일일이 열거했다.
어산지의 업적에 대한 찬사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다. 작심하고 쓴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뉴욕타임스의 이 같은 행태는 유감스럽게도 인신공격성 보도의 전형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둘러싼 주변 환경도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미 국방부와 법무부는 어산지를 기밀 누출 혐의로 간첩법을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위키리크스가 서버를 두고 있는 스웨덴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어산지의 성폭행 의혹을 계속 조사할 태세다. 스웨덴 이민국은 그의 거주권 허용 요청을 거부했다. 그가 현재 체류하고 있는 영국 비자는 올해 안에 만료된다.
조국 호주는 그가 법망 바깥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그를 보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설상가상으로 동료들은 그의 독선적인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떠나고 있다. 후원금도 줄어들고 있다. 그동안 어산지에게 우호적이던 국가와 동료, 조국마저 그를 등지는 상황에 빠져든 것이다.
어산지의 행위가 국가기밀 누설이라는 논란을 부른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행위에 대한 알 권리도 있다.
어산지의 행위가 국가기밀 누설이라는 논란을 부른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행위에 대한 알 권리도 있다.
그렇다면 왜 그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 돼야 하나. 이 대목에서 어산지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 의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기밀 공개가 계속될수록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되고 전쟁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어산지가 공개한 것은 전쟁 속에 감춰진 진실이다. 그리고 그는 정부와 언론의 ‘침묵의 카르텔’을 깼다. 그가 공개한 참상은 이라크인이나 아프간인에겐 전혀 새삼스럽지 않을 수 있다. 늘 겪어온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제대로 다루지 않은 언론에 있다.
“세계 주류 언론들이 전쟁의 진상을 제대로 다뤘더라면”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뼈아프다. 그를 향한 포위망은 지금도 좁혀들고 있다. 그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쫓기다 결국 미국 손에 체포돼 간첩죄로 기소될 수도 있다. 어산지의 몰락과 함께 진실마저 묻힐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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