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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마감후

마감후8/9·11 패러다임에 갇힌 미국


미국의 8월은 뜨겁다. 5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강타당했을 때만큼이나 뜨겁다. 이른바 ‘그라운드 제로’ 모스크 건립 논란 때문이다. 9·11 참사 현장인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모스크를 세운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에겐 ‘그라운드 제로’가 지닌 민감성과 ‘모스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으로도 논란을 낳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과 각 종교단체의 찬반 입장이 가세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9·11과 무관한 지역에까지 모스크 건립 논란을 낳고, 11월 중간선거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이미 미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 논란의 성격은 ‘양날의 칼’과 같다. 9·11의 상흔이 남아있는 미국인은 무슬림의 노골적인 도발 행위로, 피해의식에 빠진 무슬림들은 미국인들의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여긴다. 실제로 이번 논란은 미국 안에서 무슬림에 대한 반감을 확산시키는 구실이 되고 있다. 시사주간 ‘타임’의 최근 조사를 보면 명확하다. 미국인 28%는 무슬림이 대법관이 돼서는 안되고, 3분의 1은 대통령 출마자격을 줘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오바마를 무슬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24%로, 앞선 퓨리서치 조사 결과(18%)보다 증가했다. 물론 논란 확산을 막기 위한 해법을 찾는 노력도 엿보인다. 데이비드 패터슨 뉴욕 주지사(민주)는 ‘그라운드 제로’ 반경 2㎞ 이내의 땅을 주정부가 사들여 종교기관 설립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티머시 돌란 뉴욕 대주교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항의를 수용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던 수녀원을 이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해법을 제시했다. 돌란 대주교는 “거기서도 통했는데 여기서도 통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이슬람 지도자들의 양보를 염두에 둔 말이다.

모스크 논란의 근저엔 헌법적 권리인 종교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종교적 관용의 시험대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종교의 자유는 신앙, 종교적 집회·결사, 선교활동 등을 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뿐 아니라 이를 강제받지 않는 소극적 자유까지 포함한다. 뉴욕시가 모스크 건립을 허용한 것은 종교적 자유 개념을 폭넓게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가톨릭 신자들이 ‘그라운드 제로’에 십자가를 세우겠다거나, 유대교도들이 ‘다윗의 별’을 세우겠다고 할 경우에도 허용할 것인가. 논란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사실 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실 왜곡이 논란을 확산시킨 측면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우선 모스크 건립장소는 ‘그라운드 제로’가 아니다. 두 블록 떨어진 곳이다. 문제의 건물도 모스크가 아니다. 이슬람 단체가 건립코자 하는 것은 예배장소를 비롯해 체육관과 수영장, 식당, 강당 등이 들어있는, 일종의 ‘커뮤니티 센터’였다. YMCA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도 ‘그라운드 제로’ 모스크 논란으로 발전했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비주류 및 극우 블로거들의 농단 탓이다. 이들의 파상적인 공세가 대통령과 주류 언론마저 논란에 말려들게 한 것이다.
이슬람 단체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결정을 철회할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어떤 식으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미국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길 것이라는 점이다. 증오는 폭력을 낳는다. 이번 논란으로 미국내 무슬림은 위험에 빠질 수 있고, 미국은 전 세계로부터 반미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9·11 참사 9주년을 앞둔 지금, 미국 사회는 여전히 9·11에 갇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