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미국을 배회하고 있다. 이 유령이 들춰낸 치부들은 미국을 뒤흔들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악몽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백악관과 국방부를 비롯한 미 행정부는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 혈안이다. 그러나 유령은 공중을 빙빙 돌며 먹이를 찾는 독수리처럼 끊임없이 오바마 행정부의 치부를 노리고 있다. ‘위키리크스’라는 유령이다. 위키리크스는 이제 미국의 최대 위협 가운데 하나가 됐다.
위키리크스는 처음부터 유령처럼 다가왔다. 지난 4월5일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세상을 전율시켰다. 2007년 7월 이라크 바그다드 상공의 미군 아파치 헬기에서 마치 사냥하듯 민간인들을 향해 기총소사를 퍼붓는 장면은, 희희낙락하며 환호하는 조종사의 몰인간적 행태와 겹치면서 분노를 자아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실체는 이로써 발가벗겨졌다. 하지만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3개월 20일 뒤, 메가톤급 핵폭탄이 터졌다. 지난 25일 위키리크스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일지(war logs)’라는 이름으로 공개한 9만2000여건의 기밀문서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민간인 사망, 파키스탄 정보부와 탈레반의 유착, 탈레반 요인 암살을 위한 비밀 특수부대 운용 등 감춰진 아프간전의 실상이 이 기밀문서들을 통해 드러났다. 미 행정부는 “전쟁 중에 벌어진 일” “중요한 문서는 없다”는 식으로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아프간 전쟁 일지 공개 이틀 만인 27일 문서 누출이 “개인이나 작전의 잠재적 위험”이라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위키리크스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120만건의 비밀문건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간폭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내부비리 폭로가 목적이다 보니 위키리크스의 활동은 유령처럼 이뤄지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 활동하기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서버도 익명성이 법적으로 보장되는 나라에 두고 있다. 활동가들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위키리크스에는 주인이 없다. 정부의 비리에 관심 있는 내부고발자나 반체제 인사, 언론인, 사회활동가 등 누구든 정보원이 될 수 있다. 정보제공자 신원보다 정보 내용을 중시한다. 대신 신원은 철저히 보호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위키리크스가 공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보다 더 큰 두려움이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위키리크스라는 유령은 미국의 정보자유법(FOIA)의 부산물이다. 위키리크스의 기밀문서 폭로가 낳은 ‘국가기밀 대 언론자유’ 논란의 중심에 ‘정보자유’라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는 행정부와 언론 간의 정보자유를 둘러싼 투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국가 안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미 행정부는 정보 비밀주의를 강화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취한 조치가 대표적 사례다. 위키리크스가 정보자유를 강조하는 이유는 창설자 줄리안 어산지가 지난 25일 독일 슈피겔과 한 인터뷰에서 확인된다. 그는 “양심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공권력의 남용을 폭로했다. 우리의 일은 이들을 보호하고 대중에게 알리고 역사 기록이 부인되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는 “전쟁을 책임진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고 대답했다.
위키리크스는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하나하나 뭉치면 국가권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정부 비리를 폭로하는 것이 정책을 바꾸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내부고발자든 언론인이든 활동가든 모두가 단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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