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썸네일형 리스트형 [편집실에서53]염치없는 호모에렉투스는 되지 말자(2016.08.09ㅣ주간경향 1188호) 두 장면을 떠올려보자. 첫 번째, “타이어를 껴입고 배를 깔고 바닥을 기며 구걸하는 걸인이 비가 오자 벌떡 일어나 멀쩡하게 걸어”가는 장면이다. 두 번째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굽신대며 표를 구걸하고, 신분을 위장한 채 머슴입네 간을 빼줄 듯이 가난한 자의 발바닥이 되겠다던 정치인들”이 “숙였던 고개와 바닥에 깔았던 신분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거만한 지배자가 되는” 장면이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두 장면은 시인 백무산의 시 ‘호모에렉투스’에 나온다. 시인은 걸인과 정치인을 “생존을 위해 직립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시인은 걸인과 정치인 행태에서 배신감이나 혐오를 떠올린다. 그러나 걸인의 동냥 쇼와 정치인의 계급위장 쇼는 다르다고 본다. 시인의 대담한 시구 안에 답이 있다. “배를 깔고 바닥.. 더보기 [편집실에서52]공화국의 위기(2016.08.02ㅣ주간경향 1187호) “국가를 테러로부터 보호하는 데 필요한 예비조치이며 민주주의 보호를 위한 것이다.” “북한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해서다.” 참으로 익숙한 화법이다. 두 사람의 말이지만 한 사람의 말로 착각할 만큼 닮아 있다. 전자는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유로 내세운 말이다. 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한 말이다. 언론들은 에르도안의 비상사태 선포를 ‘역(逆)쿠데타’라고 부른다. 반대파 제거를 정당화하기 위해 쿠데타를 이용한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의 언급에는 ‘국민에게 싸움걸기’라는 조롱이 붙는다. 터키 국민은 한국을 ‘칸가르데쉬 코리아’, 즉 ‘피를 나눈 형제’라고 부른다고 한다. 여러모로 닮은 한국과 터키가 위기에 .. 더보기 [편집실에서51]오웰이 지금 한국에 산다면(2016.07.26ㅣ주간경향 1186호) 존스의 매너 농장에는 메이저라는 늙은 수퇘지가 있다. 메이저는 농장의 동물들에게 인간의 착취와 학대에 대해 반란을 일으킬 것을 호소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메이저의 가르침은 수퇘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에게 전해진다. 그들은 다른 동물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농장을 장악한다. 농장 이름도 ‘동물농장’으로 바꾼다.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다른 동물들에게 ‘7계명’ ‘동물주의’를 가르치며 세력을 키워간다. 농장을 빼앗긴 존스는 이웃의 도움으로 농장을 되찾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스노볼과 나폴레옹 간 권력 다툼이 심해지지만 나폴레옹은 자신이 교육시킨 아홉 마리 개를 동원해 스노볼을 내쫓는다. 그 뒤 돼지들이 중심이 된 회의체를 만들어 권력을 장악한다. 시간이 갈수록 돼지들은 서서 걷고 채찍을 들고 옷을 입는 등 .. 더보기 [편집실에서50]“같이 삽시다”(2016.07.19ㅣ주간경향 1185호)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 정의당의 노회찬 원내대표는 비교섭단체 대표 발언을 하기 위해 연단에 섰다. 그는 국회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더라도 근로자 평균임금의 3배, 최저임금의 5배 가까운 액수입니다.” 그리고 가슴팍에 꽂히는 말이 나왔다. “같이 삽시다. 그리고 같이 잘삽시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평균임금이 오르고 최저임금이 오른 후에 국회의원의 세비를 올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국회가 먼저 나서서 고통을 분담하고 상생하는 모범을 만듭시다.” 그리고 7~8초의 침묵 뒤 ‘언어의 마술사’다운 한마디. “아무도 박수 안 치시네요.” 이 말을 한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고, 회의장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같은 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한상균 .. 더보기 [편집실에서49]EBS에 뻗친 검은 손(2016.07.12ㅣ주간경향 1184호) “교육부가 EBS를 관리해야 한다.” “EBS는 전반적으로 민주주의를 왜곡한 점이 많다.” EBS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게다. 전자는 새누리당 4선 한선교 의원의 말이다. 후자는 보수단체 자유경제원이 EBS에 항의하기 위해 보낸 공문 내용이다. 공통점은 EBS의 특정 프로그램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살펴보자. 우선 한 의원의 말이다. 그의 말은 6월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나왔다. 그는 이준식 부총리에게 “EBS가 아이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집어넣고 있다”면서 위의 말을 했다. 이 부총리는 “EBS는 독립적 기관이기 때문에 관리한다는 말씀을 드리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한 의원은 “그게 문제”라며 “지금 말씀처럼 헐렁헐렁하.. 더보기 [편집실에서48]그릇된 ‘미생지신’에 갇힌 대통령(2016.07.05ㅣ주간경향 1183호) “세종시 원안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공약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소신이나 생각이 변했다면 판단력의 오류 아니겠느냐.” 2010년 1월 중순,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당시 한나라당에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이 한창일 때 정몽준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 간 논쟁이 벌어졌다. 정 대표가 불을 질렀다. 정 대표는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 전 대표를 미생(尾生)에 비유했다. 미생은 고사성어에 나오는 인물이다. 애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 익사해 흔히 융통성 없이 원칙만 고수하는 사람을 빗댈 때 원용된다. 발끈한 박 전 대표는 나흘 뒤 반격했다. “이해가 안 된다.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지만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미생은.. 더보기 [편집실에서47]샌더스 정신의 실천자들, ‘버니크래츠’(2016.06.28ㅣ주간경향 1182호)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도 끝나면 그 여운이 서서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지난 14일 끝난 11월 미국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당 경선 드라마도 그럴 것이다.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다윗(버니 샌더스)이 골리앗(힐러리 클린턴)을 이기는 반전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물론 반전은 없었다. 드라마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여운이 짙다. 주연보다 조연이 빛난 드라마였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아쉬움이 커서일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샌더스의 역할은 흥행을 돕는 분위기 메이커에서 끝나는 걸까. 미국과 전 세계를 들썩였던 샌더스 돌풍도 경선 종료와 함께 사라질까. 민주당은 샌더스 효과를 어떻게 계승해 대선 승리를 이끌 것인가. 샌더스 지지자들은 그의 유산.. 더보기 [편집실에서46]싸우지 않고도 여성들이 이기는 방법(2016.06.21ㅣ주간경향 1181호) 이번호 마감을 하루 앞둔 목요일 밤. 퇴근 버스에서 후배 여기자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멎는 듯했다. “깜깜하고 까마득한 기분… 살아있다는 생동이 아닌 살아남았다는 생존, 내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다른 세계의 감각이었다. …지난 몇 주간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이름 지을 수 있는 감각들이 무기력했고 슬펐고 무서웠다.” 공감의 표시로 ‘좋아요’를 어느 때보다도 꾹 눌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많은 여성들이 날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악몽 속에 사는 동안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사건은 계속 일어나도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니. 그 직전에 또 다른 후배 여기자가 글을 올렸을 때도 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이 여교사였다면 이렇게 할 수 .. 더보기 [편집실에서45]스크린도어 안팎과 그 사이 어디에도 없는 자들(2016.06.14ㅣ주간경향 1180호) 지하철역에 처음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을 때 ‘그 기준이 뭘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하철역 내 사고를 계기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으니 안전이 최우선 고려사항이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용객이 많은 역이 0순위였을 것이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도 불온한 생각이 스멀스멀 일었다. 혹시 지역 차별은 없을까. 힘 없는 동네 역이 힘 센 동네 역에 밀리는 상황 말이다. 스크린도어에 붙은 광고판을 보면 돈 거래가 설치 순위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억을 더 더듬어 보면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기 전에는 ‘안전선’이라는 게 있었다. 선로에서 조금 떨어진 플랫폼에 그어진 노란색 선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안전선 안과 밖이 헷갈린 것이다. 열차가 도착할 때면 방송이 흘러나온다. “열차가 들어오고 .. 더보기 [편집실에서44]‘팔할’의 도(2016.06.07ㅣ주간경향 1179호) 왜 ‘팔할’이었을까. 학창 시절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자화상’ 시구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를 읽고 든 의문이었다. 칠할도 구할도 아닌 팔할. 성찰의 근거가 뭔지는 모르지만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당 식으로 풀면 노력이 구할구푼이다. 의문을 풀 실마리를 찾았다. 18세기 문인 이덕무(1741~1793)의 글을 소개한 (2015, 북드라망)이었다. 서얼 출신의 이덕무는 스스로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고 부를 만큼 책을 좋아했다. 하지만 너무나 가난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는 이덕무의 방이 작음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에 방을 넓히라고 ..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