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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48]그릇된 ‘미생지신’에 갇힌 대통령(2016.07.05ㅣ주간경향 1183호)

“세종시 원안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공약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소신이나 생각이 변했다면 판단력의 오류 아니겠느냐.” 2010년 1월 중순,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당시 한나라당에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이 한창일 때 정몽준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 간 논쟁이 벌어졌다. 정 대표가 불을 질렀다. 정 대표는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 전 대표를 미생(尾生)에 비유했다. 미생은 고사성어에 나오는 인물이다. 애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 익사해 흔히 융통성 없이 원칙만 고수하는 사람을 빗댈 때 원용된다. 발끈한 박 전 대표는 나흘 뒤 반격했다. “이해가 안 된다.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지만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괴로움 속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논쟁의 승자는 박 전 대표였다. 이를 계기로 그는 원칙과 신의를 지키는 정치인으로 각인돼 3년 뒤 청와대에 입성했다.

몇 해 전 이야기를 끄집어낸 까닭은 최근 결론이 난 영남권 신공항 소동 탓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시작된 논란은 ‘김해 신공항’이라는 해괴한 결말로 끝났다. 이 과정을 돌이켜보면서 박근혜와 정몽준의 ‘미생지신(尾生之信) 논쟁’이 떠올랐다. 결론을 놓고 보면 박 대통령은 융통성과 신의의 원칙을 의미하는 미생지신의 의미 가운데 후자만 보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생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 ‘소진열전’을 비롯해 <장자> ‘도척편’ 등에 나온다. 미생지신은 논란의 사자성어인 것 같다. 다른 문헌과 달리 <사기> ‘소진열전’의 주인공 소진은 미생을 신의 있는 인물의 대명사로 삼고 궤변을 펼친다. 현실주의자 공자에게 미생은 당연히 마뜩잖았다. 공자는 <논어> ‘공야장’에서 “누가 미생고(微生高·미생)를 정직하다 말하는가. 어떤 사람이 식초를 빌리려 갔더니 (살아 남기 위해 없다고 하지 않고) 이웃집에서 빌려다가그 사람에게 주었더라.” <사마천 한국견문록>

(까만양·2015)에서 이를 소개한 이석연 전 법제처장(변호사)은 “공자는 이 예를 들어 미생이 정직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때 나도 미생지신의 참뜻을 오해한 적이 있다. 낭만에 젖고 정의감에 불타던 젊은 시절이었다. 때문에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 꼬리표는 여전히 따라다니지만 시간이 지나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면서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다.

신의와 원칙, 융통성은 책임 있는 위정자들의 필수 덕목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김해 신공항 소동에서 보듯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정책 결정과정에서 신의와 원칙을 손바닥 뒤집듯 땅바닥에 내팽개쳤고, 융통성을 단물 빠진 껌처럼 내다버렸다. 그 결과 사회는 둘로 쪼개지고 갈등은 심화됐다. 오죽하면 2011년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해 공약 파기라는 비난을 받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융통성이 지금 와서 칭송받을까. 박 대통령은 원칙주의자로 남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국정 책임자의 자세는 아니다. 어쩌면 박 대통령은 미생지신의 참뜻을 깨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미생론은 원칙이 아닌 고집과 아집일 뿐이다. 국정 책임자라면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옳은 행동을 해야 한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원칙을 바꾸는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고집불통의 신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목숨 바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원칙이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