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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68]아직 촛불을 내려놓을 때가 아니다(2016.12.06ㅣ주간경향 1204호)

다섯 번째 거대한 촛불이 광화문광장에서 타오르기 하루 전인 11월 25일 이른 아침 출근길.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잠시 멈춰서서 광화문광장 쪽을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 광장은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너머 북악 아래 구중궁궐 청와대는 암흑천지처럼 어둠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날마다 하루를 시작하는 발걸음을 내딛는 광화문광장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 지 다섯 번째. 그곳에서 벌써 분노한 민중의 거대한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내일은 어떤 축제판이 펼쳐질까. 늘 그랬듯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연대의 힘으로 대동세상을 만들 꿈을 담금질하겠지. 이런 상념에 빠진 채 광화문광장을 뒤로하고 회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뒤에서 뭔가가 목덜미를 강하게 잡아당기는 느낌이다. 도대체 뭘까. 그것은 한 달 동안 이뤄낸 결실을 도둑맞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달 동안 촛불집회가 열리는 주말은 혁명전야였고, 광장은 해방구였다. 그러나 무질서가 아닌, 질서와 이성이 지배한 축제의 시간이자 공간이었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공연을 펼치고 연설을 해도 목적은 같았다. “박근혜 퇴진!” 그 목소리는 부패와 부조리로 가득찬 국가 시스템을 개조해야 한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지지율 5% 대통령은 오불관언이다. 민심을 얻은 자가 천하와 권력을 얻지만 민심을 잃은 자는 천하도 권력도 잃는다는 말도 무용지물이다. 시간이 갈수록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비리와 추행이 쏟아져도 부끄러운지조차 모른다. 혼용무도한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 머릿속에 들어가 국정을 농단한 비선실세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심지어 불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말들이 대통령 주변에서 나오는 마당이다. 미래의 불륜 드라마와 역사 드라마 이야깃거리를 한꺼번에 제공했다는 비아냥이 나돌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퇴진운동의 중심은 광장에서 정치권으로 옮겨가고 있다. 공존하던 광장의 정치와 의회의 정치가 통합되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하지만, 민심과 정치권의 거리는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괴리감이 느껴진다. 한마디로 시민과 정치권이 따로 놀고 있는 것 같다. ‘이러려고 주말마다 광장에 나왔나’ 하는 자괴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특검, 국정조사,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질 정계개편과 대선 등 어느 하나 정해진 경로가 없다. 국민들의 바람대로 가리라는 보장도 없다.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오히려 대통령이 탄핵 절차를 수용한 점, 야권이 ‘선 총리 선출, 후 탄핵’ 입장에서 돌아선 점 등을 보면 권력게임이 본격화하는 것 같아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촛불민심을 외면하는 노림수가 지배한다면 설사 탄핵이 되더라도 그 이후 전개될 정치일정은 배반의 정치판이 되기 십상이다. 그 결과 정치적 이해관계만 판치고 촛불민심은 사라지고 만다. 힘 빠지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죽 쒀서 개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은 촛불을 끌 때가 아니다. 광장을 떠날 때는 더더욱 아니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광장의 촛불이 그 동력이다. 여기까지 온 것도 촛불의 힘이었다. 촛불이 꺼지지 않는 한 정치권은 촛불민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권이 낡은 체제와 부조리를 청산하는 리셋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촛불은 횃불이 돼 타오를지도 모른다. 지금부터가 진짜 게임의 시작이다. 두 눈 부릅뜨고 정치권을 주시해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우리 곁에는 활활 타오르는 4750만개의 촛불이 있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1611291147421#csidxa48b9c7764a8f469d942bd9f33331c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