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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마감후

마감후21/리비아의 친구들

프랑스와 영국 등 60개 국가와 국제기구 대표들이 지난 1일 파리에 모였다. 무아마르 카다피를 축출한 반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가 이끄는 새 리비아의 출발을 축하하기 위한, 전승국 잔치 같은 자리였다. 한국에서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대표로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리비아의 친구들’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과도국가위에 축하선물로 150억달러의 지원을 약속하며 우정을 과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습에 반대해온 중국과 러시아, 브라질도 참석했다. 카다피 이후 리비아 재건 논의에서 제몫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러시아는 염치가 있었는지 회의 직전 과도국가위를 인정하고, 모스크바 초청을 약속했다. 반면 중국은 유엔 주도의 재건을, 브라질은 외부 간섭 배제를 강조하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냈다. 


중국과 러시아, 브라질마저 리비아의 친구들로 자처하고 나선 마당에 정작 보이지 않은 친구가 있었다. 아프리카의 경제대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친밀도를 따지면 남아공은 카다피 시절 리비아에 있어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다. 카다피는 남아공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항거한 넬슨 만델라와 그가 만든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만델라에게 자신이 만든 ‘카다피 국제인권상’을 처음으로 바칠 정도였다. 만델라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남아공 최고훈장을 카다피에게 수여하고, 로커비 사건으로 곤경에 빠진 그를 위해 대변인 역할을 자처했다. 

 리비아 남자가 호텔 입구의 카다피 사진을 밟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 경향신문DB


만델라의 후계자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제이콥 주마 대통령은 지난 3월 카다피를 전쟁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하고, 리비아 국민 보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서명했지만 나토의 리비아 공습엔 반대했다. 리비아 사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해 카다피를 두 차례나 찾았다. 과도국가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남아공이 향후 국제무대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음에도 회의에 불참하게 된 데는 속사정이 있다. “아프리카 문제는 아프리카가 해결해야 한다”는, 반제국주의 및 반식민주의 인식이다. 
 
서방은 남아공의 이 같은 행보를 근시안적이라며 못마땅해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리비아 사태 이후 서방의 행보는 과거 카다피 시절과 180도 달라졌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영국이 카다피에게 보인 행보는 남아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최근 외신 보도에서도 확인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군수업체 제너럴다이내믹스는 리비아 사태가 터지기 한 달 전까지 카다피 정예부대인 카미스 여단과 탱크와 포, 경장갑차의 통신시설을 현대화하는 협의를 진행 중이었다. 인디펜던트는 영국 해외정보국(MI6)과 미 중앙정보국(CIA)이 2004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리비아 테러리스트인 압델 하킴 벨하지를 태국 방콕에서 체포해 리비아로 강제송환했다는 내용의 문서를 폭로했다. 벨하지는 심문과정에서 CIA의 강압적 기법으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벨하지가 카다피를 트리폴리에서 축출하는 데 앞장선 반군 사령관으로 변신해 현재 트리폴리 치안유지 책임자로 영국과 미국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국제사회에서 친구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벨하지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폭로로 새 리비아와 미국·영국 간의 평화로운 관계가 깨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서방도 카다피와의 의리와 실리 속에서 고민하는 남아공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볼 필요가 없다. 남아공이 언제 돌아설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과연 누가 진정한 리비아의 친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