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반월가 시위’는 노동과 정당한 부의 축적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됐다. 2008년 금융위기의 장본인인 월가 금융인의 탐욕과 부도덕성은 일반 미국인들을 두 번이나 울렸다. 많은 미국인은 금융위기로 초래된 경기침체로 일자리도, 살 곳도 잃었다. 굶주리느냐 마느냐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 정부의 구제금융 덕에 살아남은 월가 금융인들은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자기 배만 채운다. 그러면서 시위대의 주장에 정당한 부의 축적이라고 반박한다. 정당한 부의 축적은 미국을 지탱해온 자본주의 정신의 원천이라는 이유에서다. 많은 미국 부자들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반월가 시위가 초래한 정당한 부의 축적에 관한 논쟁은 두 사람을 떠올린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을 통해 자본주의 노동윤리의 형성과정을 파헤친 막스 베버와 베버가 책에서 자본주의 정신을 실현한 이상형으로 제시한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베버는 노동에 대한 강박관념을 낳은 자본주의 정신이 노동을 통해 신의 구원을 확인받으려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정신은 합리적인 이윤추구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돈 버는 것 자체를 정당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프랭클린은 개척정신과 실용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미국의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프랭클린이 자서전에서 밝힌 절제와 근면 등 13가지 생활덕목은 자기계발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 많은 미국인은 그가 제시한 덕목을 따라 성공을 이뤘고, 미국은 위대한 국가가 됐다. 말하자면 프랭클린은 미국 성공신화의 개척자인 셈이다. 미국 최고가 지폐인 100달러 초상화의 주인공이 프랭클린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랭클린의 잣대로 보면 월가 금융인들은 탐욕과 부도덕의 화신이다. 그들은 한탕주의와 승자독식 논리에 빠져 미국을 지탱해온 자본주의 정신을 훼손했다. 그들의 그릇된 윤리의식은 프랭클린의 생활지침을 신주 떠받듯 하며 살아온 대다수 미국민들을 모욕했다. 하지만 월가 금융인들이 자본주의 정신을 망각한 것을 그들의 탓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 미국은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아니다. 특히 미국의 헤게모니는 21세기 첫 10년 동안 급격히 쇠락했다. 9·11 테러와 테러와의 전쟁, 금융위기로 미국은 부도덕의 상징이 됐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로렌스 카츠는 21세기 첫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다. 통계수치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10년 동안 일자리 수는 제자리 걸음이었다. 과거 60년 동안 10년 단위로 평균 20% 이상 일자리가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실질소득은 1996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위 1% 부자들의 소득은 늘어났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의 수석 경제정책보좌관을 지낸 자레드 번스타인에 따르면 1% 부자의 소득은 지난 10년 동안 중산층과 빈곤층의 실질소득이 감소한 상황에서도 65%나 증가했다.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젊은 세대를 비롯한 미국인들은 희망마저도 꿈꾸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이들이 의지할 곳은 없다. 현 체제를 바꾸는 일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절박감이 이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반월가 시위가 언제까지 갈지, 어떤 형태로 발전할지 속단할 수 없다. 이들의 외침과 행동이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는 변혁의 시작이 될지조차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시점에서 미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프랭클린 다시 읽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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