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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6]롯데 드라마와 극장정치(2015.08.18ㅣ주간경향 1139호)

지금 한낮의 무더위와 열대야를 식힐 블록버스터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해 롯데시네마에서 상영하고 있는 <두 형제의 결투>다. 황제경영을 해 와 ‘神격호’로 불린 창업주 아버지가 늙고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 두 아들이 벌이는 경영권 쟁탈전을 담고 있다.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재벌의 삶과 인식’ ‘재벌가의 복잡한 혼맥’ ‘재벌가와 정치권의 결탁’ 등 흥행 요소는 모두 갖춰져 있다. 여기에다 빠져서는 안 되는 막장 드라마는 물론 한국인을 자극시키는 반일감정 요소도 있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흥행 성적은 가히 돌풍이라 할 만하다. 상영 일주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언론은 이 영화의 흥행 소식을 매일 주요 뉴스로 다룰 정도다. 여야와 정부 할 것 없이 정치권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영화 사상 최단시일 안에 최대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표출됐다. ‘롯데가 일본 기업이었어?’라는 놀라운 발견은 과외 소득이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반도체 회로보다도 복잡한’ 롯데그룹의 출자구조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77개 계열사들의 복잡한 출자구조로 이뤄져 있으며, 이 구조에는 400개가 넘는 순환고리가 있어 방정식의 해를 구할 수 없습니다. 이런 구조를 설계한 신격호는 神격호입니다.” 오민규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페이스북에 ‘노동개혁보다 재벌개혁이 우선’이라는 역발상을 올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 여야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재벌개혁을 외치며 오 위원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롯데 경영권은 두 아들 중 누구에게 갈까. 재벌개혁은 이뤄질까. 얼키설키 복선이 깔려 있더라도 아는 사람은 안다. 여야가 공방을 그럴 듯하게 펼치는 ‘극장정치’의 전형적인 행태라는 사실을. 그래서 목청 높여온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는 이내 수그러들 것이라는 사실을. 정치권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이렇게 변명할지도 모른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정부는 한술 더 뜬다. 대통령 주연의 <국민대담화>라는 반전 드라마를 내놨다. 소속 당의 색깔인 빨간색 재킷을 입은 대통령의 입에서는 노동·공공·교육·금융 등 4대 개혁에 대한 강경한 말만 나왔을 뿐 재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킬링타임용으로 보는 블록버스터 영화는 대개 보고 나면 막힌 속을 뻥 뚫어준다든지, 배꼽을 쥐어잡게 한다든지 하는 소득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뒤끝이 씁쓸할 것 같다. 알면서도 속는 기분이랄까. 젠장, 더위를 먹었나 보다. ‘한여름 밤의 꿈’인 줄도 모르고 혼자만 진지했던 내 모습에 쓴웃음이 나온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