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13]괴물은 되지 말자(2015.10.20ㅣ주간경향 1147호)

아이들에게 세상은 괴물 천지다. 부모는 물론이고 주변 환경 모두가 괴물이다. 2012년 작고한 미국의 유명한 그림책 작가 모리스 센닥의 대표작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s Are)>에는 그런 두려움에 가득찬 아이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어느 날 엄마한테 야단 맞은 맥스는 벌로 저녁을 굶은 채 잠이 든다. 꿈속에서 그는 오히려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가서 괴물들과 함께 논다. 맥스가 꿈속에서 괴물을 상상하는 것은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자란 뒤 그들이 겪은 고통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 ‘일 못하는 사람들 유니온’ 회원 오수경은 이번 호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란에 기고한 글(47쪽)에서 영화 <사도>를 본 소감을 전하면서 비슷한 질문을 하고 답한다. “사도세자처럼 미치광이가 되거나 견고한 시스템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다.”

사회철학자 정성훈은 ‘현대사회’가 괴물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펴낸 <괴물들과 함께 살기>에서 괴물을 이렇게 규정했다. “‘사회’와 함께 살면서 각자의 ‘고유한 사람 되기’라는 힘겨운 과제를 포기하고 사회의 여러 조직들로부터 부여받은 역할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인간, 그래서 자신의 역할 수행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인간.” 그에게는 수많은 국민의 지지로 성립한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만이 아니라 수많은 소비자의 선택으로 성장한 삼성과 현대도 괴물이다. 뿐만 아니다. 대중문화와 예술, 과학, 종교 등 다양한 모습을 띤 괴물도 있다. SM과 JYP, 황우석, 스티브 잡스와 애플, 순복음교회 등이다. 이 때문에 그는 “괴물과 함께 살기는 참으로 힘겨운 일”이라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 사회는 ‘괴물’이 된 지 오래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괴물>에서 이 질문을 던진 게 2006년이다. 현대사회가 괴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도처에는 괴물들이 깔려 있다. 입시지옥, 청년실업,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에서 다양한 괴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세대 갈등 유발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괴물은 50대인 나와 같은 기성세대가 물려준 것이다. 50대 음악평론가 강헌은 모 팟케스트에서 우리 세대를 이렇게 설명했다. “5000년 한국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세대였다. 절대빈곤에서 빠져나와 활황을 경험한 첫 세대, 완전고용 시대를 중년기에 맞이하고, 동시에 헐렁한 국가시스템 속에서 수많은 꿈을 꾸고 살 수 있는 마지막 세대….” 그랬다. 우리는 부모세대가 몸 바쳐 물려준 따뜻한 현실에 안주하면서 과실만 따먹은 채 미래세대에는 자랑스런 유산을 남겨주지 않았다. 절망만 안겼다.

기성세대는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못난 세대이지만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홍상수 감독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주인공이 현대사회에서 사람 대접받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을 어길 때마다 하는 다짐을 잊지 말자. “사람이 되는 건 힘들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