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갈 때 동료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너 없어도 회사는 잘 굴러가.” 회삿일일랑 걱정 말라며 건네는 인삿말이다. 이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될 수가 있다. 누구든 저성과자로 몰려 퇴출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바로 정부가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개혁이다. 내용 하나하나가 노동조건을 악화시켜 서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것투성이다.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일반해고 요건이 완화되면 ‘정당한 사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는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무너진다. 최대 피해자는 노조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이다. 현재 노조 조직률은 10% 선. 전체 노동자 100명 중 90명이 쉬운 해고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숫자가 1800만명이나 된다. 취업규칙 변경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노사 간 단체협상이나 직원 50%의 동의로 가능하지만 어용노조를 만들어 변경해온 관행이 만연한 상황에서 정부 지침으로 더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대타협 직후 노동시장 선진화를 당론으로 내걸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실업급여를 늘리고, 기간제 사용기간을 확대하고,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까지 파견 대상을 확대…. 하지만 사용자의 희망사항을 받아들인 것으로,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려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이 같은 정부·여당의 시도가 실현된다면 ‘헬조선’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이 쾌재를 부르며 공천권 다툼에 여념이 없어도 야당은 내부 투쟁으로 지리멸렬하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한국노총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부 품안에 안겼다. 강성·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민주노총은 싸우고 있으나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건 개악작업이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데도 최대 피해자가 될 서민들은 재앙적 결과에 대해 모르는 것 같다. 머리 위에 디모클레스의 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자신의 삶을 사용자와 정부에 맡긴 채 선처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는 데도 말이다. ‘신의 아들’로 자처하는 다수 정치인들의 무관심은 차치하자. 그동안 노조라면 경기를 일으킨 시민들은 잘됐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10% 안에 속하는 우리 스스로도 희생자는 자신이 아닐 거라 여기며 동료 뒤에 비겁하게 숨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노조는 경제의 적’이라는 선전에 취한 사이에 우리의 삶의 형편은 좋아졌을까. 그렇다고 누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정부와 여당의 폭주를 막아야 할 야당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선택은 하나뿐이다.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노조를 만들든, 반노동개혁 투쟁을 벌이든 몸부림쳐야 한다. 잘릴 걱정 없이 맘 놓고 휴가 갈 수 있느냐가 아닌,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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