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및 유럽연합 탈퇴, 해외파병 중단, 오사마 빈라덴을 암살한 미국 비난, 일방적 핵무기 폐기, 이라크전에 개입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전범 기소…. 대외정책뿐 아니다. 국내 개혁에도 목소리를 높인다. 부자 세금 인상, 기업에 대한 세금 우대조치 중단, 사회 인프라와 재생에너지를 위한 양적완화 실시, 건강보험 민영화조치 중단, 왕정 폐지, 에너지·철도·우편 국유화, 대학 등록금 무료화, 여성 장관 절반 기용….
이 같은 급진좌파 성향의 정책을 주장한 이는 지난 12일 압도적 지지로 영국 야당인 노동당 대표가 된 제러미 코빈(66)이다. 우리에겐 금지된 언어를 말하는 코빈도, 이를 받아들이는 풍토도 부럽다. 기존 엘리트 지도부 일부가 자진사퇴하고, “차기 총선에서 전멸할 것”(블레어 전 총리)이라느니 “국가·경제·가정 안보의 위협”(집권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코빈은 40여년간 비주류 정치인이었다. 혜성처럼 나타났지만 그를 버티게 한 힘은 옳음과 경제적 불평등 시정을 향한 변함없는 신념이었다. 그의 정치 이력서에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돼온 기업의 횡포, 정치인과 방산업체만 배불리는 전쟁 등에 대한 비판으로 점철돼 있다.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2016년 대선의 민주당 경선 후보 버니 샌더스(74)는 어떤가. 그도 코빈처럼 자칭 민주사회주의자이자 비주류 정치인이다. 이 같은 40년 정치역정 덕에 그는 1912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6% 가까운 득표를 한 ‘미국 사회주의자의 아버지’ 유진 뎁스 이후 유일한 사회주의자 후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가 지배하는 세상을 뒤엎고 99%가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선동한다. 시민들은 환호로 답한다. 이러다가 힐러리 클린턴을 무너뜨리는 게 아닌가 하는 착시마저 느낀다. 영국과 미국의 비주류 정치인들의 돌풍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난 30여년간 맹위를 떨쳐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가 드러난 게 아닐까. 이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오랜 세월 동안 언제나 국민의 편에 서 온 데 있지 않을까. 변화와 전복을 향한 열망이 투영된 이들의 미래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놓여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어떤가. 정치혐오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신자유주의와 노동자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다. 국민들은 살기에 바빠 정치를 외면한다. 나만 괜찮다면 오케이라는 식이다. 우리의 삶을 옥죄는 난폭한 손길은 우리가 침묵할수록 당당하고 거칠다. 일반해고와 부모세대를 일터에서 내쫓는 내용을 담은 노·사·정 합의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자행됐다. 언제까지 남들만 부러워할 건가. 모두가 침묵할 때, 기다리는 메시아는 오지 않는다.
한가위가 다가온다. 장성한 자식이나 조카들에게 덕담조차 건넬 수 없는 참담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래도 우리는 자문하고, 물어야 한다. 우리의 코빈은, 샌더스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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