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 진정한 지식인을 말할 때 단골로 꼽히는 프랑스 작가다. 그는 19세기 말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해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로 국가 폭력에 맞섰다. 그 결과 그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진정한 지식인의 표상을 우리에게 심어줬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으로 조성된 갈등이 한국 지식인의 역할을 묻고 있다. 전국 역사학과 교수들의 국정교과서 필진 참여 거부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띄는 이가 있다. 국정교과서 편찬의 책임을 진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다. 역사학계의 원로이자 고려대 사학과 명예교수이기도 한 그는, 말하자면 제자들과 역사학계 후배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그런 평가를 받게 했는지 알 수가 없다. 혹시 자신을 학자가 아닌 정치인으로 여겨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 지난 12일 김 위원장이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함께 참석한 기자회견장. “대한민국 수립이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인가.” 김 위원장은 “그 얘기를 여기에서 하면 불필요한 얘기가 자꾸 될 것 같아 안 하겠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의 답변에는 역사학자의 인식보다 ‘국론분열’ 운운한 대통령의 화법이 풍겼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비슷한 답변을 했다.
하지만 황 총리와는 경우가 다르다. 황 총리는 정치인이고, 김 위원장은 학자이기 때문이다. 국편 위원장이어서 정부 편에 설 수밖에 없었던 걸까. 김 위원장의 처신은 ‘내가 하는 것이 옳다’라는 자기확신이거나 국가에 대한 봉사라는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확신이라 하더라도 경계해야 한다. 자기확신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더욱이 권력과 손잡았을 경우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합리화라도 일제강점기 때처럼 시대의 강요에 의한 부득이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를 위해 권력에 빌붙은 것이라면 곡학아세 지식인의 자기변명이자 자기모순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화 논쟁 중에 가토 슈이치 자서전 <양의 노래>를 읽었다. 그는 20세기 지식인의 표상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책에서 일본제국주의와 태평양전쟁, 패전과 미군 점령기의 일본과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겪은 대사건들을 주변부에 서서 상식과 통찰력으로 재해석했다. “태평양전쟁 동안 일본에 살면서 내가 정부의 선전에 현혹되지 않았던 이유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모르더라도 쉽사리 간파할 수 있을 정도로 선전이 자기모순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추세에 대한 내 판단의 큰 줄기가 틀리지 않았던 것은 내가 실제 정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근대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그 흐름의 방향을 거스르려는 자는 멸망하리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냉철한 상황인식과 투철한 역사의식이 없고서야 어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지식인의 자기확신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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