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3년 전이었다. 2013년 4월 3일,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조세회피처 폭로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케이맨제도 등 유명 조세회피처에 있는 유령회사 12만여곳과 170여개국의 정치인·기업인·유명인 등 약 13만명의 탈세 및 돈세탁 실태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우연의 일치일까, 의도한 걸까. 그로부터 정확히 3년 뒤인 지난 4월 3일, 2차 조세회피 자료 ‘파나마 페이퍼스’가 폭로됐다. 이번 폭로 주체도 ICIJ다. 공개 자료는 3년 전보다 10배나 많은 1150만건이다. 200여곳 이상의 국가 및 지역이 관련된 21만4000여개의 페이퍼컴퍼니 정보를 담고 있다. ICIJ의 수고가 없었더라면 각국 지도자를 포함한 유명인들의 조세회피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ICIJ만큼이나 기억해야 할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존 도’다.
존 도는 신원을 알 수 없거나 비밀로 해야 할 때 쓰는 남성형 가명이다. 일반 남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역사적 사건이 늘 그렇듯 이번 폭로도 익명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자료에 관심 있나요?” 존 도라는 가명을 쓴 익명 제보자의 메시지가 지난해 초 독일 언론 <쥐트도이체차아퉁> 기자에게 날아들었고, 기자는 관심을 드러냈다. 우리는 아직 존 도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그가 내부고발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내부고발자들에게 빚졌다. 1971년 미국 국방부의 베트남전 비밀보고서인 펜타곤 페이퍼스의 대니얼 앨스버그, 2010년 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일지와 국무부 외교문서를 위키리크스에 폭로한 첼시 매닝, 2013년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비밀정보수집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이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됐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전쟁의 추악함도, 국가의 부도덕함도, 1%들의 부패도 제대로 알 수 없었을 터이다. 그리고 용감한 언론인들도 있다. 펜타곤 페이퍼스를 최초로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자,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산지, NSA 폭로의 글렌 그린월드, 파나마 페이퍼스를 있게 한 바스티안 오베르마이어와 프레데리크 오베르마이어 기자, 그리고 2013년 처음으로 조세회피처 자료를 폭로한 언론인이자 파나마 페이퍼스 폭로를 총지휘한 ICIJ의 제러드 라일이 그 주인공들이다.
4월은 공교롭게도 폭로의 계절이다. 두 차례 조세회피처 폭로 때문만은 아니다. 위키리크스 자료의 하나로, 미국의 이라크전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부수적 살인’ 동영상이 공개된 날은 6년 전 4월 5일이었다. 목숨과 바꾼, 정치인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내용을 담은 ‘성완종 리스트’가 폭로된 날은 4월 9일이다. 그리고 폭로되지 않은 진실이 있다. 세월호 참사다. 때마침 4월 7일은 신문의 날이었다. 진실에 목마른 사람들의 목을 적셔주고, 폐허에서 진실을 인양해야 하는 이가 언론인이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한국의 존 도를 기다리며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는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줄 우리의 존 도는 어디에 있는가.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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