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20대 총선 후보 공천 결과는 정치에 환멸을 주기에 충분했다. ‘갑질 공천’ ‘셀프 비례 공천’ ‘계파 간 갈등’ 등 부정적 레토릭이 난무했다. 공천 잡음은 선거 때만 되면 나오게 마련이지만 정도 문제다. 이번 공천자 상당수는 엘리트들이다.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는 대의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여당은 극단주의자마저 껴안아 오른쪽으로 한 발 더 나갔다. 친박 세력의 비박 학살 공천에 이은 친박 간의 진박 다툼까지, 차기 대권주자들의 힘겨루기 장으로 변질됐다. 야당은 이른바 민주화세력을 솎아냈다. 스스로 야성마저 버렸다. 한마디로 토론은 실종되고, 여야가 작정해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심어준 시간이었다.
판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이제는 표를 달라고 한다. 평소에는 안중에도 없던 국민을 떠받든다. 선거 때가 되면 국민의 표를 구하는 게 정치인들의 습속이라지만 국민을 장기판의 졸로 보는 안하무인에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국민을 두 번 죽이는 꼴이다. 새누리당의 비박계 대표 인사 유승민 의원을 보자. 그는 이참에 아예 헌법 교수로 나설 태세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그는 헌법 1조 2항을 그 변으로 언급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이 그의 전매특허인가. 정치적 고비 때마다 그는 헌법과 국민을 이용한다. 지난해 7월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원내대표에서 물러날 때 그는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을 들먹였다. 과연 그의 본심은 국민에게 있을까. 그가 “헌법에 의지한 채 저의 정든 집을 잠시 떠납니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고 한 것처럼 그의 최종 목적은 새누리당으로의 복귀다. 자기를 부정하는 세력과의 결별도, 새 정치 추구도 아니다. 기득권 정치 속에서 더 큰 이득을 얻기 위해 국민을 이용한 것뿐이다. 또 “오직 국민만 두려워하겠다”고 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말을 100% 믿을 사람이 있을까.
일찍이 장 자크 루소는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가 된다”고 했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하지만 국민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주체에서 객체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그렇다고 정치인이 만든 정치적 환멸에 굴복할 수는 없다. 절망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분노해야 한다. 정치인의 독선을 막을 수 있는 이는 국민밖에 없다. 우리가 답할 차례다. 졸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것이 기존 정치 엘리트들에게 앙갚음하는 길이다. 지금은 혁명을 일으킬 시대도, 우리에게는 그럴 역량도 없다.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투표 참여는 지난하지만 정치 엘리트들이 원하는 걸 막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다.
30여년 전, 독재정권의 엄혹한 현실을 한탄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고 한 언론인이 있다. 김중배 선생이다. 그가 1984년에 펴낸 <民은 卒인가>라는 책 머리글에 쓴 ‘새벽이 없는 밤은 없다’에 나오는 글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 글을 인용하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거듭 말하고자 한다. 민초(民草)여, 끝내 새벽은 열린다. 희망을 상실하면, 희망의 새벽은 열리지 않는다. 희망이 깨어 있으면, 희망의 새벽은 열리고야 만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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