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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43]한강이 온다 한들(2016.05.31ㅣ주간경향 1178호)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점을 찾았다. 그의 책 세 권을 샀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바람이 분다, 가라>. 평소 유행 대열에 끼는 걸 꺼리는 나로서는 일탈이었다. 무엇이 나를 이끌었는지 모르지만 그날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 아마도 호기심에 따른 충동이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두어 달 전 그가 이 상 후보 13명에 뽑히고 한 달 전 최종후보 6명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비록 관심은 갔지만 책을 사야겠다는 간절함은 없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내리 읽었다. 완전히 한강에 빠져버렸다.

그의 소설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너무나 한국적인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행동했을 법하다. 축하할 일을 축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 근성이 오버랩된 까닭이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문학동네 사정이 국제 문학상 수상에 들떠 있을 만큼 밝지도 건강하지도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관심이 한강에 쏠려 있을 때 문학동네의 어두운 그림자이자 민낯을 보여주는 일이 일어났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가 저소득층을 위한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이 됐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연간 소득 1300만원 미만 무주택자라 신청 대상이란다…. 아는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강의를 달라고 애원하니 학위를 묻는다. 국문과 석사 학위도 없으면서 시 강의를 달라고 떼쓰는 내가 한심했다.” 한때 베스트셀러 작가마저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자로 전락하는 것이 문학계의 슬픈 현실이다. 정부의 정책은 어떤가. 교육부가 이달 초 발표한 ‘프라임사업’ 선정 결과를 발표를 보면 한탄이 절로 나온다. 선정된 21개 대학은 내년부터 신입생을 뽑을 때 인문사회 분야에서 2500명을 줄이는 대신 공학 분야에서 4500명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그 대가로 총 600억원을 지원한다. 말하자면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이라는 명분과 돈을 앞세운 대학 구조조정 계획인 셈이다. 이보다 명백한 인문학 멸시 사례가 있을까. 한 달에 책 한 권도 채 읽지 않는 한국 성인의 독서량은 언급해 무엇하랴.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고 이런 풍토가 바뀔까.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침체된 출판계를 살리고, 인문학을 일으켜 세우는 작은 힘이 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