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승리는 미국의 비극’.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 제목이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면 공화당은 물론 미국인에게 재앙이 될 거라는 우려의 표현이다. 이달 초 트럼프가 사실상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면서 그에 대한 불안감이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우려가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민주당으로서는 조급해진 것 같다. 민주당도 이 기회에 힐러리 클린턴으로 후보를 확정해 ‘클린턴 대 트럼프’ 대결구도를 만들어 대선에서 승리하고 싶어한다. 실제로 양자 대결 시 클린턴이 승리할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려면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 버니 샌더스다.
클린턴 측과 민주당의 바람대로라면 공은 샌더스 손에 있는 셈이다. 클린턴과는 결이 다른 진보 의제로 경선 돌풍을 일으켜 온 샌더스도 공화당에 정권을 넘겨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중장년층·유색인종에 인기 있는 클린턴과 젊은층·백인에 인기가 많은 샌더스의 결합은 대선 필승 방정식이다. 그렇다면 샌더스는 경선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샌더스는 7월 전당대회 때까지 계속 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클린턴 측은 샌더스 지지층을 자극할까봐 경선 포기라는 말을 입 밖에조차 내지 못한 채 속만 태우고 있다.
샌더스가 경선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보자. 우선 지지자들이 경선 완주를 원한다. NBC방송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지자의 89%는 경선 완주(6월 14일)가 아닌 7월 말 전당대회 때까지 도전하기를 바란다. 특히 지난 3일 인디애나주 경선에서의 5%포인트 승리는 그로서는 고무적이었다. 3월 미시간주에 이어 클린턴의 아성으로 꼽히던 곳에서 거둔 승리이기 때문이다. ‘경선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또 희박하지만 후보 지명 가능성도 없지 않다. 프리딕트와이즈는 그 가능성을 2%로 봤지만. 더욱이 샌더스가 경선을 포기해도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증거가 없다. 클린턴 측은 트럼프가 샌더스의 클린턴 공격무기, 즉 “클린턴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말을 그대로 활용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우려대로 트럼프는 활용 중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선례가 있다. 2008년 대선에서 클린턴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슷한 말로 공격했다.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이를 오바마 공격무기로 활용했지만 결과는 아는 그대로다. 마지막으로 클린턴도 2008년 대선 경선에서 승산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뒤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샌더스는 클린턴 지지를 선언할 수밖에 없다. 샌더스는 가장 유리한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돌풍 효과가 최대로 발휘되고 자신의 의제가 클린턴에 체화되는 시점 말이다. 그것은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가 승리한 비결이기도 한 젊은층의 지지와 클린턴의 최대 약점인 ‘1%’ 이미지의 탈색이다. 샌더스가 이번 대선에 남기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기도 하다. 샌더스의 유산을 계승하는 것이 클린턴과 민주당으로서는 자지자들에게 보답하고 그에게 아름다운 퇴로를 열어주는 길이다. 그러길 간절히 염원한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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