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이 지났지만 9·11 테러를 둘러싼 풀리지 않은 의혹들은 많다. 대표적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9·11은 알려진 테러리스트 19명만의 독자적 소행인가, 아니면 도움을 준 배후국이 있는가. 물론 방점은 후자에 찍혀 있다. 그리고 배후국으로는 이미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목됐다. 물론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결정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결정적 증거로 거론돼 온 게 있다. 이른바 ‘사라진 28쪽’이다. 9·11을 조사한 미국 의회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가운데 공개되지 않은 부분을 말한다. 800쪽이 넘는 보고서 가운데 비밀에 부쳐진 분량이 28쪽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 단어로 7200개쯤 된다고 한다.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보 총책임자인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에게 공개 여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사라진 28쪽’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르면 6월까지 일부가 공개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배후국 논란과 의혹은 2003년 미 의회 조사위원회가 830여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문제의 28쪽을 공개하지 않아 불거졌다. 유족과 일부 의원, 시민단체는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끄떡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게 사우디와의 관계 유지다. 요약하면 테러와의 전쟁이나 그 후 짜여질 중동 역학구도에서 사우디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공개할 경우 유족들이 사우디 정부 관계자나 은행 등을 상대로 제소하는 등 걷잡을 수 없는 파장도 예상된다. 때문에 사우디는 공개 시 750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 내 자산을 매각할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라진 28쪽은 배후 의혹 해소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을까. 9·11 의회 보고서나 중앙정보국(CIA) 보고서(2015년 6월)의 결론은 “사우디 배후 증거는 없다”이다. 다만 CIA 보고서는 일부 사우디 정부 내 동조자들이 도와줬을 개연성이 있다고 적시해 여지를 남겼다. 문제의 28쪽을 세 번 읽어봤다는 팀 로머 전 하원의원은 경찰의 초동 수사 보고서에 비유했다. 의혹을 풀 실마리나 혐의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관심과 별도로 오바마 행정부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도 확실하지 않다.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면 굳이 공개할 이유가 없다.
9·11 희생자 가족으로서는 사라진 28쪽의 공개를 요구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진실만이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9·11 피해자 공동대표인 테리 스트라다는 이렇게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이 28쪽을 비밀로 분류했을 때 테러리스트 19명 가운데 일부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호했지만 9·11 희생자와 생존자, 미 본토에서 일어난 최악의 테러 배후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국민에 대해서는 효과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진실을 숨김으로써 이슬람국가(IS)와 같은 알 카에다 관련 테러조직의 출몰과 세력 확장을 보고 있다.” 9·11과 사라진 28쪽을 세월호 참사와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비유하면 지나칠까. 더 참담한 쪽은 세월호 유족들이다. 28쪽은 미 의회 지하실에 남아 있기라도 하지만 7시간 의혹을 밝힐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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