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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실에서

[편집실에서42]빼앗긴 봄을 되찾자(2016.05.24ㅣ주간경향 1177호)

올해 봄부터 외출할 때 생긴 습관이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일이다. 미세먼지 상태가 ‘나쁨’이면 일단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창문도 열지 않는다. 출퇴근할 때는 마스크를 쓴다. 가방에는 비상용 마스크(KF80)가 준비돼 있다. 미세먼지 탓에 겪는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좋은 봄날을 완상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크다. 몇 주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고교생 딸과 봄나들이 갈 요량으로 토요일에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예약까지 마치고 마감에 열중하던 금요일 밤, 아내가 전화를 했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 수준이라서란다. 딸과의 여행에 한껏 들떠 있었지만 딸아이의 건강과 맞바꿀 수는 없어 결국은 포기했다. 딸은 만성 아토피에 시달리고 있다.

생돈 10만원을 날리고 허탈한 심정으로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뉴스를 접하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매우 나쁨’ 경고에도 유치원 운동회, 프로야구 등 각종 행사들이 주말 내내 열렸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탓에 행사를 취소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도대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저 사람들은 뭐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는데, 그 경우인가. 아니면 위험한지조차 모르는 걸까. 나중에는 애국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정부는 임시공휴일까지 만들어 내수진작에 나선 마당 아니던가.

물론 이도 저도 아닐 터이다. 알았다면 누가 그렇게 하겠나. 전문가들은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때 아예 외출을 삼갈 것을 권한다. 그럼에도 바깥활동이 버젓이 이뤄지는 이유는 아마도 황사와 달리 미세먼지는 보이지 않아 위험을 감지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뿌연 하늘이 맑은 하늘로 바뀌면 황사는 사라지지만 미세먼지는 그대로 남는다.

처음에는 미세먼지 농도였지만 이제는 초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우리의 미세먼지 기준이 외국보다 엄격하지 않다는 얘기들이 나오면서부터다. 우리는 입자 크기가 10㎛(100만분의 1m)인 PM10을 ‘미세먼지’라고 부른다. 머리카락 굵기의 6분의 1 정도다. 이보다 4배 작은 PM2.5를 ‘초미세먼지’라 한다. 하지만 건강과 환경에 관한 사실을 체크해주는 사이트인 그린팩츠(greenfacts.org) 분류를 보면 PM2.5를 미세먼지라 정의한다. 초미세먼지는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PM0.1을 말한다. 결국은 우리의 초미세먼지 기준보다 25배나 엄격하다는 의미다.

기준의 차이가 모든 차이를 낳는다. 미세먼지 기준을 상대적으로 낮게 잡다 보니 대응도 느슨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고 국민건강에 적신호로 다가오는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우리가 이번 호 ‘표지이야기’로 정부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끝내 사과하지 않는 환경부 장관의 태도와 인식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면 그런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미세먼지에 빼앗긴 봄을 찾기 위해 요구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헌법 제35조 1항)를 보장하라고.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