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EBS를 관리해야 한다.” “EBS는 전반적으로 민주주의를 왜곡한 점이 많다.” EBS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게다. 전자는 새누리당 4선 한선교 의원의 말이다. 후자는 보수단체 자유경제원이 EBS에 항의하기 위해 보낸 공문 내용이다. 공통점은 EBS의 특정 프로그램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살펴보자.
우선 한 의원의 말이다. 그의 말은 6월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나왔다. 그는 이준식 부총리에게 “EBS가 아이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집어넣고 있다”면서 위의 말을 했다. 이 부총리는 “EBS는 독립적 기관이기 때문에 관리한다는 말씀을 드리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한 의원은 “그게 문제”라며 “지금 말씀처럼 헐렁헐렁하게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왜 ‘EBS 관리’ 발언을 했을까. 그가 문제삼은 것은 EBS가 지난 5월 하순에 5차례 방송한 <다큐프라임> ‘민주주의’였다. 그는 “그 무슨 ‘프라임’ 방송은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고 있다. 거기서 좌파의 잘못된 생각을 아이들에게 집어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젊은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다큐프라임>과 <지식채널e>를 관리하고 있느냐”며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면 뭐하냐, 방송에서 그런 방송이 나오고 있는데”라고 말했다. 자유경제원이 EBS에 항의 공문을 보낸 때는 6월 16일이다. 계기 역시 <다큐프라임> ‘민주주의’였다. 어떤 내용이 자유경제원을 자극했을까. 자유경제원 측은 “민주주의를 자원 배분을 하는 도구처럼 그리고 있다”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건 좌편향적 시각에서 민주주의를 해석한 것으로, 방송에 출연한 해외석학들도 대부분 좌파 성향 학자”라고 주장했다.
도대체 <다큐프라임> ‘민주주의’가 어떤 프로그램이었기에 자유경제원과 여당 중진 의원이 발끈한 것일까. EBS 측은 “불평등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재해석한 다큐멘터리”라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민주주의’는 평범한 시민들을 위해 고안된 인류의 지혜인 민주주의가 불평등과 시민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지 알아본다”고 했다. EBS는 노엄 촘스키, 존 던, 애덤 셰보르스키, 리처드 프리먼 등 세계적인 석학들의 인터뷰를 통해 민주주의의 전통을 회복하는 방안을 모색했다고 한다. ‘좌파’ 운운한 한 의원과 자유경제원의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말 뒤에 감춰진 목적이다. 왜 자유경제원과 여당 중진 의원은 이구동성으로 EBS를 싸잡아 비난하려는 걸까.
이 글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 목적을 암시하는 일이 터졌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이 KBS 보도국장에게 보도 통제를 압박하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의 공개다. 현 정권의 방송장악 실태를 이보다 잘 보여주는 예가 있을까. 그래서일까. 당사자인 KBS를 비롯한 공중파 3사가 그날 밤 뉴스에 단 한 꼭지도 보도하지 않은 사실이 놀랍지도 않았다. 이는 정권의 방송장악이 사실상 끝났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테니까. 그리고 그 마침표가 EBS 장악일 테니까.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김수영 시인 좌편향 덧칠하기에 앞장서 온 자유경제원과 방송을 장악하려는 새누리당이 이를 위해 손을 잡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칠까. 과연 ‘KBS 보도통제’ 녹취록 공개로 자유경제원과 새누리당의 EBS 장악 공세는 수그러들까, 계속될까.
<조찬제 편집장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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