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도 끝나면 그 여운이 서서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지난 14일 끝난 11월 미국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당 경선 드라마도 그럴 것이다.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다윗(버니 샌더스)이 골리앗(힐러리 클린턴)을 이기는 반전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물론 반전은 없었다. 드라마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여운이 짙다. 주연보다 조연이 빛난 드라마였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아쉬움이 커서일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샌더스의 역할은 흥행을 돕는 분위기 메이커에서 끝나는 걸까. 미국과 전 세계를 들썩였던 샌더스 돌풍도 경선 종료와 함께 사라질까. 민주당은 샌더스 효과를 어떻게 계승해 대선 승리를 이끌 것인가. 샌더스 지지자들은 그의 유산을 어떻게 현실정치에 반영하려 노력할까.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마지막 궁금증이다. 그들의 노력이 없다면 샌더스 효과는 신기루나 백일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풀 요량으로 미국 뉴스 사이트를 뒤지다 눈에 띄는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버니크래츠(Berniecrats)’다. 생소했다. 정확한 어원은 모르겠지만 버니 샌더스의 ‘Bernie’와 민주당원을 뜻하는 데모크래츠(Democrats)에서 ‘crats’의 합성어가 아닐까 싶다. 우리말로 옮기면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 민주당원’쯤 되겠다. 버니크래츠 네트워크(berniecrats.net)라는 사이트도 있다. 이 사이트를 보면 버니크래츠가 누군지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샌더스 정신을 안고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하원 선거나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소속 정당보다 이슈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이 사이트가 파악하고 있는 버니크래츠 숫자는 6월 9일 현재 394명이다. 샌더스 정신을 현실정치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단체들이 활동 중인 사실도 확인했다. 샌더스를 공식적으로 지지해 온 진보언론 <내이션>에 따르면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은 4개다. ‘민주당 점령(The Occupy Democrats)’ ‘완전 새 의회(Brand New Congress)’ ‘노동하는 가정당(The Working Families Party)’ ‘피플스 서밋(The People’s Summit)’이다.
샌더스 정신의 핵심은 정치혁명이다. 샌더스는 “정치혁명이 백악관 입성보다 더 중요하다”고 경선과정 내내 강조했다. 그가 말한 정치혁명은 건강보험, 공짜 대학등록금, 최저임금 15달러 등 진보의제를 실현하는 일이다. 샌더스를 위해 소액을 기부한 풀뿌리들의 꿈이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힘은 의회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풀뿌리 대표들이 의회에 진출하는 일이 급선무다. 버니크래츠는 미국 풀뿌리들의 원대한 꿈을 싣고 달리는 샌더스 정치혁명 열차의 기관차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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