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8일 한반도 쪽으로 이동한다던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열흘이 지나서야 선수를 돌렸다고 한다. 한반도 4월 위기설의 한 축이었던 칼빈슨호의 한반도 조기 배치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칼빈슨호가 긴급히 항로를 변경했다는 소식에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걱정한 한국민으로서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미국은 거짓 정보로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킨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칼빈슨호의 한반도 이동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 행정부 최고당국자들이 확인해주면서 기정사실화됐다. 미 태평양사령부가 처음 거론한 뒤 지난 10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재확인, 12일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 등이 이어졌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비하기 위해 호주로 향하던 뱃머리를 긴급히 돌렸다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그러나 칼빈슨호의 한반도 조기 배치는 지난 15일 이 항모가 인도양에서 호주와 연합훈련 중인 사진이 공개되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미 언론들은 칼빈슨호의 항로 논란을 두고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부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소통 부재를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백악관은 “오도한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칼빈슨호 항로 논란이 미 행정부의 착오인지, 의도된 전략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한반도뿐만 아니라 미국 외교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나아가 트럼프의 행동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 다시 한번 부각됐다. 이는 북한을 오판하게 만들어 최악의 실수를 초래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이번 소동에 대해 “북한이 속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후 미국의 전쟁 위협에 더 많은 의심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미국의 거짓 정보에 속지 않게 북한이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경고까지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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