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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경향신문 사설

[사설]대선 정책 검증 - 재탕 대책으로는 미세먼지 못 잡는다(170501)

봄철이면 대한민국 전체가 미세먼지 공포에 짓눌린다. “숨 좀 제대로 쉬어보자”는 아우성이 해마다 커지고 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시민들의 바람을 담아 미세먼지 대책을 ‘10대 공약’에 처음으로 포함시켰다. 미세먼지 환경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고 석탄화력발전소와 노후 경유차를 줄이며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시민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한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그간 논의해온 대책을 취합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문제다.

미세먼지 공약 중 가장 눈에 띄는 게 화력발전소 미세먼지 저감대책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안철수 국민의당·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미착공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립 계획 취소와 재검토를 약속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석탄발전소 가동률을 제한하는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화력발전소 미세먼지 저감대책의 재탕 수준이다. 또 후보 대부분은 미세먼지 주요 배출원인 경유차 축소와 친환경차 확대 방침을 내놨지만 주요한 미세먼지 발생원인 자동차나 교통정책에 대한 문제인식은 낮았다. 

단기간에 실천할 수 없는 공약도 있다. 연간 초미세먼지(PM2.5) 환경기준을 세계보건기구(10㎍/㎥)나 선진국(8~15㎍/㎥)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이 좋은 예다. 한국의 초미세먼지 기준은 25㎍/㎥이지만 올 1분기 전국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32.3㎛/㎥로 이미 기준을 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을 국제 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무용지물이다. 

중국발 미세먼지 대책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후보들은 한·중 정상급 의제 격상(문재인), 한·중·일 정상회의체 운영(유승민), 중국과 환경외교 강화(안철수), 한·중·일 협력사무국 신설(심상정)로 풀겠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과의 협력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중국이 구체적인 오염배출원이라는 과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문제는 그 같은 연구자료가 태부족하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무엇을 어떻게 요구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세먼지 대책 수립에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대기오염 배출시설이나 배출원에 대한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미세먼지 배출원은 복잡하고, 지역이나 사안에 따라 다르다. 후보들의 대책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대부분 빠져 있다. 

이처럼 대선후보들의 미세먼지 대책은 단편적이며, 국가 수준의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선공약에 처음으로 반영한 것에 만족하는 자세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차기 대통령도 임기 중 성과를 보겠다는 조급증에 빠져서는 안된다. 후임자가 정책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는다는 자세로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실효성 있고 실천 가능한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 당장 대책이 늦어지면 시민들은 건강에 위협받고 사회적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미래세대가 미세먼지로 건강을 위협받지 않도록 장기적인 대책도 추진해야 한다. 현재와 미래 모두를 고려하는 미세먼지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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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302044015&code=990101#csidxb84b2321c7b7927b3a7590f5c093c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