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탐욕스러운 자본가나 기업가를 비난할 때 ‘살찐 고양이(Fat Cat)’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192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할 때부터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거액을 기부하는 부자를 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현재 의미로 굳어졌다. 당시 금융위기를 극복해야 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임기 동안 월가 은행가들을 자주 ‘살찐 고양이’에 비유했다. 그는 2009년 CBS 방송 <60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월가의 살찐 고양이 은행가 무리를 도우려고 출마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의 후계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월가 고액 강연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살찐 고양이’ 비난이 오바마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오바마가 오는 9월 월가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가 주최하는 보건 관련 회의에서 오찬 기조연설자로 나서는 대가로 40만달러(약 4억5000만원)를 받기로 계약했다고 미 언론들이 25일 보도했다. 오바마에게 위선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강연료 40만달러는 전임자들과 비교해도 고액이다. 퇴임 대통령으로 고액 강연료를 처음 챙긴 이는 제럴드 포드였다. 그의 몸값은 4만달러였다. 가장 몸값이 높았던 빌 클린턴은 20만~50만달러였다. 특히 클린턴이 부인과 함께 챙긴 강연료는 천문학적 수준이다. CNN에 따르면 이들은 2001년부터 2015년 5월까지 총 729회 강연을 해 1억5367만달러를 벌었다. 논란이 된 월가 투자은행을 대상으로 한 것도 39차례 770만달러나 됐다. 이 가운데 클린턴 전 장관도 골드만삭스 3회 등 5개사에서 8차례의 강연으로 180만달러를 받았다. 이 사실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드러나면서 클린턴은 곤욕을 치렀다.
백악관을 떠나기 전부터 오바마의 몸값이 퇴임 대통령으로서 최고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2월 맺은 그와 부인의 회고록 계약금은 60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논란은 그의 천문학적인 몸값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다. 하지만 퇴임 대통령으로서 공식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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