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종교에 기반을 둔 종족분쟁 로힝야 사태로 보름여 만에 수백명이 사망하고 37만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유엔 안보리는 이번 사태를 인도주의 위기로 보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13일(현지시간)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종교와 종족 문제가 얽힌 모든 분쟁이 그렇듯 로힝야 사태는 간단하지 않다.
이 사태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를 꼽으면 불법이주자와 군부다. 로힝야는 미얀마 서부 벵골만에 연한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무슬림을 통칭한다. 이들은 지금의 방글라데시에서 8세기부터 라카인주 지역에 노예, 노동력 등 다양한 형태로 들어온 뒤 원주민 라카인족(불교도)과 공존해왔다. 1948년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불법’으로 이주했다. 이번 사태 전까지 라카인주 거주 로힝야는 110만~120만명. 그런데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를 불법이주자로 규정하고 있고, 라카인족도 이들을 원주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로힝야는 ‘비국민’인 셈이다.
불법이주자 낙인은 군사정권이 찍었다. 1962년 쿠데타로 들어선 군정은 로힝야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불교도와 무슬림 간 갈등을 통치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대표 사례가 1977년 불법 외국인 색출 조사인 ‘나가밍 프로그램’이다. 이때 로힝야 2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1982년 새 국적법이 실시됐을 때도 로힝야는 국민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학교 입학이나 의료 서비스, 공직 진출 혜택은 물론 이동조차 금지됐다. 이에 반발한 로힝야는 아라칸로힝야반군을 조직해 군부와 과격 불교파에 대항했다. 그 결과 이번을 비롯해 1991~1992년, 2012년, 2015년, 2016년 대규모 유혈 및 난민사태가 빚어졌다. 2011년 민정이양 후에도 로힝야의 신분은 변하지 않았다.
불법이주자 딱지를 없애고 로힝야를 국민으로 인정하면 사태는 해결될 터이다. 그러려면 미얀마 정부와 로힝야 간 평화협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자 실권자인 아웅산 수지는 손을 놓고 있고, 군부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가 로힝야 난민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해결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압박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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