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미얀마 최고위직에 오른 정치적 대가가 침묵이라면 그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다”(데즈먼드 투투), “뉴스를 볼 때마다 미얀마 로힝야 무슬림들의 고통을 보는 내 가슴은 찢어진다”(말랄라 유사프자이).
남아공의 투투 대주교와 파키스탄의 유사프자이는 각각 1984년과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이는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75)다. 우호적이던 외신들도 비판 일색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수지를 “몰락하는 유산을 가진 손상된 우상”이라고 비난했다. 토론토스타는 “부끄러운 위선”이라고 했다. 온라인에서는 그의 노벨상을 박탈하자는 청원운동이 진행 중이다. 하루 만에 전 세계에서 40여만명이 참여했다. 왜 수지는 하루아침에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에서 비난의 대상이 됐을까.
수지를 곤경으로 몰고 간 일은 ‘로힝야 박해 사태’다. 라카인주에 사는 무슬림인 로힝야는 유엔이 규정한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이다. 이들은 지난달 25일부터 군부와 과격 불교도 민병대의 폭력과 방화에 못 견디고 방글라데시로 탈출하고 있다. 그 수가 30만명에 가깝고, 사망자도 1000명에 이른다고 유엔은 추산한다. 2015년 총선 승리 후 지난해 봄부터 최고 실권자인 국가자문역을 맡고 있는 수지는 지난 5일 터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사태를 언급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이번 사태를 “거대한 오해의 빙산의 일각”으로 보며 ‘가짜뉴스’로 취급했다. 이 같은 인식은 그의 신념과 상반된다. 그는 2012년 21년이나 늦어진 노벨상 수락연설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과 살도록 강요받는 것”을 말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했다.
오랜 가택연금 속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마하트마 간디와 넬슨 만델라에 비유됐던 수지. 어쩌면 그도 현실 정치인으로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투의 지적대로 권력의 대가가 침묵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것을 휘두르는 자들을 부패시킨다.” 자신의 신화가 몰락하는 전환점에 선 수지가 되새겨야 할 자신의 말이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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