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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4] 또 하나의 워싱턴대행진((180323)

지난 13일 미국 수도 워싱턴 의회의사당 앞 잔디밭에 신발 7000켤레가 놓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헝가리 파시스트에 의해 죽은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수도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변에 설치된 신발 조각을 연상케 했다. 그런데 신발 숫자가 60켤레인 헝가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다. 누구를 추모하려는 퍼포먼스일까. 7000이라는 숫자는 무엇일까. 사실을 알고는 말문이 막혔다. 2012년 12월14일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참사 이후 숨진 어린이 숫자였다.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5년 동안 어린이 7000명이 총기로 숨진단 말인가. 1년에 1300명꼴이다. 하루에 3~4명이 총기에 희생됐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조사니 믿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총기사고가 터지는 나라가 미국이다. 놀라운 통계는 더 있다. 1968년 이후 50년 동안 총기사고로 숨진 미국인은 150만명이다. 이는 모든 전쟁에서 숨진 미국인(120만명)보다도 많다. ‘신발 퍼포먼스’는 총기에 따른 미국의 비극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총 없는 미국은 상상할 수 없다. 곳곳에서 총기 쇼가 열린다. 최신 총기 모델을 소개하는 광고가 넘친다. 할리우드 영화 속 영웅들은 총을 애용한다. 미국인 100명당 총기 보유 숫자는 90정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총기 소유를 ‘전가의 보도’처럼 여긴다. 수정헌법 2조와 미 총기협회(NRA)의 영향이 크다. 특히 수정헌법 2조는 총기소유 옹호자에게는 성경이나 다름없다. 시대가 바뀐 만큼 수정헌법 2조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주말인 24일 수도 워싱턴에서는 대규모 행진이 열린다.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다. 미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도 동참한다. 이 ‘워싱턴대행진’은 지난 2월14일 총기 참사가 일어난 플로리다주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고교생들이 기획했다. 당시 참사로 17명이 숨졌다. ‘더 이상은 안된다’는 심정으로 정치권에 총기규제 법안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주최 측은 참여자가 최대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지 클루니, 오프라 윈프리, 스티븐 스필버그, 아말, 저스틴 비버 같은 할리우드 스타와 가수 등 소셜테이너들이 대거 행사를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여배우 알리사 밀라노도 동참했다. 신발 퍼포먼스도 총기규제 법안을 촉구하기 위한 기획의 하나다. 그 다음날 더글러스고교 참사 한 달을 맞아 미 전역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동맹휴업 행진도 마찬가지다. 50개주 3000여곳에서 100만명 가까운 학생들이 함께했다.

학생들이 총기규제를 강화하라고 정치권을 압박하는 것은 이례적이며, 고무적이다. 대형 총기참사가 날 때마다 총기규제 여론은 일었다. 그때뿐이었다. 정치권은 철저히 침묵했다. 샌디훅 참사 이후 미 의회는 단 한 건의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주 차원에서 총기를 잠금장치를 해 보관하도록 한 곳은 매사추세츠가 유일하다. 그 결과 매사추세츠주는 총기 관련 사망률이 미 전체에서 가장 낮다. 답은 이미 제시됐다. 정치권이 응답하기만 하면 된다. 아쉽게도 아직은 아닌 것 같다.

55년 전 1963년 8월28일. 미 수도 워싱턴 내셔널 몰은 전국에서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대행진’(March on Washington for Jobs and Freedom)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마틴 루서 킹 목사를 비롯해 25만명이 참가했다. 흑인만은 아니었다. 참가자의 약 20~25%는 백인이었다. 그날 킹 목사는 링컨기념관 계단에서 그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아직은 어린 저의 네 자녀가 언젠가 자신의 피부색이 아니라 자신들의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 살게 되리라는 꿈이… 흑인 소년소녀들이 백인 소년소녀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에 손을 맞잡을 수 있으리라는 꿈이… 모든 마을과 부락에서, 모든 주와 도시에서 자유가 울려퍼질 때, 우리는 그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겁니다….” 밥 딜런의 노래 ‘블로잉 인 더 윈드’도 그날 울려퍼졌다.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돼야 무고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음을 깨달을까요….”

킹 목사의 꿈은 이뤄졌다. 이듬해 미 의회는 민권법을 통과시켰다. 한 해 뒤에는 흑인의 투표권을 회복시킨 투표권법이 제정됐다. 당연히 워싱턴대행진이 촉매제가 됐다. 물론 노예해방선언 이후 오래도록 흑인들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5년 전 워싱턴대행진이 그랬듯, 이번 워싱턴대행진이 미국의 총기규제 역사를 바꾸는 기폭제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