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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2]트럼프의 ‘왝 더 독’ 전략(180105) 

“나보고 전쟁을 조작하라고?” “아니, 실제 전쟁이 아니라 ‘전쟁 쇼’ 말이야.”

재선을 위한 대선을 10여일 앞둔 미국 백악관에 비상이 걸린다. 대통령의 여학생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언론은 이미 냄새를 맡은 상태다. 상대 후보에 앞서고 있지만 곧 역전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여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일이다. 백악관은 그 방면의 최고인 스핀닥터를 고용한다. 스핀닥터는 정치홍보전문가를 말한다. 그는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와 손잡고 가짜 전쟁을 만들어낸다. ‘전쟁 쇼’는 위력을 발휘한다. 대통령의 성추문 뉴스는 뒷전이고, 대통령은 재선된다.

1997년에 제작된 미국 블랙코미디 영화 <왝 더 독(Wag the Dog)> 줄거리다. 영화 제목 ‘왝 더 독’은 개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이다. 주객전도를 의미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위기에 놓인 권력자가 국민의 관심과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연막을 치는 행위를 일컫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당시 이 영화가 주목을 끈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성추문은 1998년 1월17일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영화가 상영된 지 한 달이 채 안된 때다. 클린턴 성추문은 그해 8월 의회 청문회로 이어진다. 바로 그때 영화 <왝 더 독> 같은 일이 벌어졌다. 르윈스키가 청문회에 출석한 이튿날, 클린턴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알카에다 훈련캠프와 수단의 화학무기 공장에 미사일을 쐈다. 그러나 수단 공장은 화학무기 공장이 아니라 제약 공장이었다. 클린턴도 미리 이 사실을 알았다. 전형적인 ‘왝 더 독’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결과는 끔찍했다. 정치적 위기 돌파를 위해 쏜 미사일 한 방에 수단이 생산하는 의약품 절반이 사라졌다. 클린턴 성추문에 대한 관심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미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 탈출을 구실로 전쟁을 일으킨 사례는 흔하다. 1983년 10월23일 레바논 베이루트 주둔 미 평화유지군 주둔지에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사망자만 241명. 2차 세계대전 이후 하루 동안 가장 많은 미군이 희생됐다. 이틀 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명분은 옛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에 따른 내전 우려였지만 베이루트 참사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함이었다. 대량살상무기 파괴를 명분 삼은 조지 W 부시의 2003년 이라크 침공도 마찬가지다. 눈엣가시 사담 후세인 제거가 목적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버락 오바마는 어떤가. 이라크 철군을 했다가 이슬람국가(IS)가 준동하자 오히려 미군을 증강시켰고, 시리아 공습도 시작했다. 역대 미 대통령들은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한 클라우제비츠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실행자였다.

도널드 트럼프도 '왝 더 독' 전략을 선택할까. 취임 1년이 채 안된 트럼프는 ‘러시아게이트’로 최악의 위기에 빠져 있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칼날은 그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특히 오는 11월 자신은 물론 공화당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 돌파를 위해 그가 전임자들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잇따른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 그룹 대표는 최근 “트럼프가 뮬러 특검의 수사에서 궁지에 몰리면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한반도에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진보 지식인 후안 콜 교수(미시간대)는 “트럼프의 지지율 추락과 북한과 이란에 대한 애매하고도 끔찍한 위협이 결합한다면 ‘왝 더 독’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미 트럼프는 낮은 단계의 ‘왝 더 독’ 전략을 구사해왔다. 아랍권을 비롯한 전 세계를 뒤집어놓은 예루살렘 수도 이전 선언,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 형성에 활용한 트위터 정치가 그것이다. 관심은 트럼프의 마지막 카드다. 전쟁으로 갈까. 그 경우 대상은 북한일 수도, 이란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제3국일 수도 있다. “화염과 분노”나 “폭풍 전의 고요”처럼 그가 북한을 향해 쏟아부은 말폭탄은 불길한 전조일지 모른다. 트럼프의 북한 공격은 상상조차 싫다. 현실을 감안하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위기를 돌파할 수 있고, 시간을 끌 수만 있다면 트럼프는 불가능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미국인들은 바보가 아니기에 트럼프에게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라도 해야 하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바람이 빗나가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두 눈 부릅뜨고 트럼프를 지켜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