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옛소련 간 냉전이 한창일 때 ‘둠스데이 머신(Doomsday Machine)’이라는 게 있었다. 핵전쟁으로, 말 그대로 인류 파멸의 날이 왔을 때 작동하게 만든 행동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미국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쏴 옛소련을 궤멸시키면 옛소련의 둠스데이 머신 ‘죽음의 손(Dead Hand)’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남은 옛소련의 핵미사일이 미국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 미국의 둠스데이 머신이 작동한다. 문제는 실제로 작동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도 1945년 8월 인류의 첫 원자폭탄 투하 이후 70여년간 둠스데이는 오지 않았다. 물론 아찔한 순간은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미 행정부가 군비경쟁에 한창 열을 올리던 1983년 9월26일의 일이다. 옛소련의 핵 발사 관제센터 컴퓨터에서 미국이 ICBM을 발사했다는 경보가 울렸다. 옛소련 전역의 핵 발사대에 경보가 걸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관제센터 당직자의 냉철한 판단 덕분이었다. 실제 상황이 아닌 컴퓨터 오류로 판단했던 것이다. 인류 절멸을 몇 차례나 가져올 수 있는 핵폭탄을 보유한 상황에서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동안 둠스데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상호확증파괴(MAD)라는 억제전략 덕분이었다. 적이 핵 공격을 가할 경우 적의 미사일 등이 도달하기 전 또는 도달한 후 남아 있는 전력을 이용해 상대편도 전멸시키는 보복 핵 전략이다. 한마디로 핵전쟁이 일어나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지도자라면 핵 도발을 감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91년 냉전 종식은 둠스데이 악몽을 잊게 만든 사건이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악몽이 되살아날 조짐이다. 지난달 말 미 핵과학자회는 핵 위기 등에 따른 지구 종말을 경고하는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를 ‘자정 2분 전’으로 앞당겼다고 발표했다. 1947년 자정 7분 전에서 출발한 이후 지난해는 지구 종말에 가장 다가간 해였다. 미·소 간 수소폭탄 경쟁이 한창이던 1953년에도 자정 2분 전이었다. 핵과학자회는 역사의 시계가 64년 전으로 돌아간 이유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응 등을 댔다.
지난해 미 본토를 겨냥한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은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를 핵전쟁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트럼프의 북한 선제공격 위협을 비롯한 압박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트럼프 스스로 둠스데이 가능성을 높인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8년 만에 발표한 핵 태세 검토보고서에서 소형 핵탄두 개발을 천명했다. 지난해에는 보유 핵탄두 숫자를 10배 늘리겠다고 한 바 있다. 미국발 신냉전이라는 분석이 틀린 말이 아니다. 각국의 군비경쟁을 부추겨 둠스데이 위기를 가속화할 게 뻔하다.
과거에도 북·미 사이에 현재 못지않은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다. 1968년 1월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1969년 4월 미 해군 정찰기 피격 사건,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94년 1차 북핵 위기다. 운 좋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의 이성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점이다. 과거에 일어난 숱한 전쟁들이 그 증거다. 더욱이 컴퓨터의 오작동이나 인간의 사소한 실수가 둠스데이의 방아쇠가 될 개연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중요한 것은 위기 상황에 임하는 자세다.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되던 지난해 10월 말, 미 상원의원 8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는 북한 선제타격을 할 수 없는 법안을 제출했다. 미국의 핵무기 운용을 담당하는 존 하이튼 전략사령관은 11월 “트럼프의 불법적인 핵 명령은 거부하겠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에 따른 북한의 보복 공격으로 초래될 재앙적인 결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미국 안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트럼프의 무모한 행동을 억제하는 실질적인 힘이다.
얼마 전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북한 선제공습 반대 결의안 채택”을 주장했다. 미국에서조차 전쟁 반대 목소리가 높은 마당에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만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때마침 평창 동계올림픽의 시작으로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국회는 주저 말고 관련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전쟁 위기 앞에 갈라진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전쟁은 결단코 반대한다’는 단호한 목소리만이 우리 위에 드리우고 있는 둠스데이 그림자를 사라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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