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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16] 트럼프와 배넌의 결합, 한번으로 족하다(19062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스티브 배넌을 여전히 필요로 하는가. 주지하다시피 배넌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당선시킨 일등공신이다. 이 질문이 떠오른 건 두 계기 때문이다. 하나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있었던 트럼프의 재선 출정식이다. 더 직접적인 건 일주일 전 영국 신문 가디언 보도다. 가디언은 트럼프가 배넌을 재선 캠프에 기용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는 야후뉴스 기자인 알렉산더 나자리언이 트럼프 재선 출정식 날에 맞춰 낸 <최고의 사람들: 트럼프 내각과 워싱턴 포위>의 내용을 미리 입수한 것에 바탕을 뒀다. 나자리언은 지난 2월 트럼프를 인터뷰했다. 트럼프는 그 자리에서 “지난 6개월 동안 배넌을 4~5차례 봤다”면서 “지금 배넌만큼 나에 대해 좋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4개월 전 이야기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배넌과 다시 한번 손을 맞잡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의문이 들 법하다. 배넌이 트럼프 재선에 중요한 인물인가.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이지만 백악관을 떠난 지 2년이 다 돼 간다. 지난 5월 말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 전후 그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2020년 대선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 그였다. 트럼프 상황도 지난 대선 때와는 딴판이다. 현직 프리미엄에다 공화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이러니 그가 트럼프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 들 법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트럼프와 배넌의 결합이 낳은 결과를 생각하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배넌이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캠프에 합류한 때는 그해 8월17일이었다. 대선을 3개월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다. 배넌은 대안 우파를 내세운 포퓰리스트 민족주의자였다. 2007년 공동으로 만든 브라이트바트 뉴스라는 매체를 통해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 반유대주의 등을 부추겼다. 트럼프와 통하는 바가 많았다. 캠프 합류 후에는 강경 이민정책과 무역정책을 앞세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를 이뤄냈다. 대선 승리 후 배넌은 승승장구했다. 인수팀에 곧바로 합류한 그는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 땐 수석 전략가라는 직함을 받았다. 백악관에 한번도 없던 자리다. 권한은 비서실장에 비견됐다. 시사주간 타임이 당시 그를 표지인물로 내세우고 ‘위대한 조종자’라고 뽑은 제목처럼 2인자 아닌 2인자였다. 그러나 백악관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주인은 엄연히 트럼프였다. 트럼프의 딸과 사위 등 경쟁자도 즐비했다. 생존을 위한 권력게임과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폭력사태 등 악재 끝에 대선 캠프에 합류한 지 꼭 1년 만에 백악관을 떠났다. 다시 브라이트바트 뉴스로 돌아갔다. 백악관 밖에서 트럼프를 지키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2018년 1월, ‘트럼프 사단’과 결별해야 하는 결정적인 일이 터졌다. 베스트셀러가 된 마이클 울프의 책 <화염과 분노>가 문제였다. 배넌이 트럼프의 큰딸 이방카를 ‘멍청이’라 부르고, 큰아들 트럼프 주니어에게 ‘반역적’이라고 한 사실이 드러났다. 트럼프로서도 두둔할 명분이 없어졌다. 하지만 세계는 넓고, 배넌으로서는 할 일이 많았다. 주 활동무대를 유럽으로 옮겼다.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극우 포퓰리즘 확산의 교두보로 삼았다. 그 결과가 지난 5월 말 유럽의회 선거에서의 극우파의 선전이었다. 배넌으로서는 2020년 미 대선을 다음 목표로 삼을 만했다. 트럼프 사단에서는 쫓겨났지만 트럼프와의 관계가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트럼프를 향한 구애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미국을 엄청 사랑한다. 그는 의무감으로 이끌어왔다. 트럼프가 나라를 구했다.”

트럼프와 배넌의 첫 번째 만남이 낳은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극우 포퓰리즘의 확산으로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은 확산됐고, 이민장벽은 높아졌다. 미 국내 정치도 마찬가지다. ‘오물 청소’를 강조하며 워싱턴 정가의 부패를 뿌리 뽑겠다고 했지만 나아진 것은 없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한마디로 트럼프와 배넌의 결합은 ‘잘못된 만남’이었다. 트럼프와 배넌의 재결합 여부는 선거 전략가로서의 배넌의 효용가치에 달려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통했지만 지금은 어떨까. 재선 캠프는 지난 대선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조직이나 선거자금이 탄탄하다. 배넌이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더욱이 민주당 유력주자들과의 맞대결에서는 불리하지만 결코 승산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자신감의 발로일까. 트럼프는 재선 출정식에서 특유의 분열을 조장하고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리고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 지키겠다”고 했다. 이는 현상유지를 강조한 말이다. 트럼프와 배넌이 재결합해 재선에 성공한다면 세계는 다시 한번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잘못된 만남은 한번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