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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30] ‘9·11 영웅’ 줄리아니는 어쩌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몸통이 됐나?(191028/주간경향 1349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가 2018년 8월 1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한때 ‘9·11 영웅’이던 줄리아니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몸통으로 추락했다. / AP연합뉴스

“도대체 루디 줄리아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범죄를 소탕한 검사로 이름을 날리고, 2001년 9·11 테러 당시 영웅으로 불린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75)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로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몸통’으로 등장하면서 터져나오는 질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보도를 종합해보면 줄리아니는 마리 요바노비치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를 축출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자신의 측근인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사업가 레브 파너스와 이고르 프루먼을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수사를 압박한 의혹을 받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외국로비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의 탄핵조사 사유가 된, 지금까지 드러난 줄리아니의 비위를 ‘빙산의 일각’이라고 부른다. 줄리아니 변호인은 10월 15일(현지시간) 이날까지 탄핵조사를 위한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는 지난 9월 30일 하원 정보위원회의 소환장에 대해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탄핵조사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줄리아니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자신을 영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줄리아니의 추락 스토리의 끝은 어디일까?

언제 우크라이나와 인연을 맺었나?

“내일도 뉴욕은 여기에 있을 겁니다. 우리는 재건하고 과거보다 더 강해질 겁니다…. 나는 뉴욕 시민들이 나머지 미국과 세계에 테러가 우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범이 되길 바랍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뉴욕시장이던 줄리아니가 발표한 성명 내용이다. 줄리아니는 용기있는 대처로 미국인을 안심시켜 ‘9·11의 영웅’이 됐다. 덕분에 그는 뉴욕시장이 아니라 ‘미국의 시장’으로 불렸다. 시사주간 <타임>은 그해 말 줄리아니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그는 ‘범죄 소탕’을 한 연방검사로 유명세를 떨쳤다. 8년간 뉴욕시장을 지낸 줄리아니는 2008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 경선 후보에 도전했다가 중간에 포기했지만 변호사와 컨설턴트로서 공화당 내 입지를 다져가다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자가 됐다.

이런 그가 어떻게 우크라이나에 발을 담그게 됐을까. <USA투데이>에 따르면 줄리아니가 우크라이나와 사업상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경선후보를 사퇴한 직후다. 안보 컨설턴트로 활동하던 줄리아니는 당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장에 도전한 WBC 세계 헤비급 권투 챔피언 출신 정치인 비탈리 클리츠코의 선거를 도왔다. 결과는 패배였지만 클리츠코는 2014년 선거에서 키예프 시장에 당선됐다. 현역 시장인 클리츠코는 지난 7월 미국을 방문해 줄리아니를 만났으며, 줄리아니는 두 사람이 만난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줄리아니가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연루된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과 유리 루첸코 검찰총장을 만난 시기는 2017년 6월이었다.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인 빅토르 핀추크가 초청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다. 이때는 트럼프의 개인변호사로 선임되기 약 10개월 전이다. 줄리아니는 2019년 1월 뉴욕에서, 2월에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루첸코 검찰총장을 연속으로 만난 것으로 트럼프의 탄핵조사를 낳은 ‘내부고발자 고발장’에서 드러났다.

루돌프 줄리아니의 측근으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레브 파너스(왼쪽)와 이고르 프루먼.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1월 뉴욕 만남은 지난 10월 9일 체포된 그의 고객인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파너스와 프루먼이 주선했다. 이들은 미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거액의 자금을 지원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다가 이날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국하기 직전 연방검찰에 체포됐다.

지난 3~4월에는 미 언론 <더힐>이 루첸코와 다른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들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우크라이나의 개입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아들의 우크라이나에서의 유착 보호와 관련한 뉴스를 보도했다. 비슷한 시기에 줄리아니는 수시로 바이든 부자, 우크라이나, 요바노비치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와 관련한 트윗을 올리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월, 줄리아니가 러시아 조사와 바이든 부자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파헤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줄리아니와 트럼프 입장에서 보면 루첸코 검찰총장은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의 우크라이나 의혹을 파헤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루첸코는 바이든이 아들의 비리를 덮기 위해 권력을 남용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줄리아니와 트럼프를 곤혹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줄리아니의 일련의 행보는 시기적으로 공교롭게도 뮬러 특검이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와 러시아는 공모하지 않았다는 특검 보고서를 낸 직후였다. 줄리아니로서는 트럼프를 공격해온 정치적 적에 대한 반대공격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해 파너스와 프루먼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사람은 반대급부로 줄리아니와 백악관을 활용해 우크라이나에서의 액화천연가스 사업에 도움을 받을 것으로 여겼다고 NBC 뉴스가 전했다.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뉴스>는 지난 7월 파너스와 프루먼이 줄리아니와 우크라이나 정부를 연결하는 연락책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줄리아니는 “바이든 부자의 방대한 범죄 혐의를 감추기 위한 한심한 보도”라고 반발했다.

트럼프의 ‘똘마니’가 된 줄리아니

“이제 그들은 전설적인 ‘범죄 소탕자’이자 뉴욕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장인 루디 줄리아니를 쫓고 있다. 그는 때로는 조금 거칠어 보이지만 대단한 사람이자 훌륭한 변호사다. 그런 일방적인 마녀사냥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 밖의 숨은 권력집단. 창피하다.”

트럼프가 10월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줄리아니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는 이날 버지니아주에 있는 자신의 골프장에서 줄리아니와 오찬을 했다. <뉴욕타임스>는 바로 전날 뉴욕 연방검찰이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줄리아니를 로비스트법 위반 여부를 수사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미 정계의 ‘아웃사이더’ 트럼프와 달리 두 차례 뉴욕시장을 지내고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도 나섰던 공화당의 주류인사였던 줄리아니는 2016년 대선에서 다른 공화당 주류인사들보다 빨리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면서 트럼프의 최측근 인사가 됐다. 트럼프 당선 후 첫 국무장관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트럼프가 ‘러시아 게이트’ 특검 수사를 받던 2018년 4월 그의 개인변호사로 합류했다.

줄리아니는 트럼프의 탄핵조사를 두고 강력 반발했다. 그는 지난 9월 26일 <애틀랜틱>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아니라 내부고발자를 영웅으로 부를 수는 없다. 내가 영웅이 될 것이다. 이 멍청이들, 이 일이 끝나면 나는 영웅이 될 것이다…. 나는 변호사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정부를 바로잡기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으로서 행동한 것이다. 내가 한 모든 일은 칭송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줄리아니는 10월 9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는 트럼프 탄핵조사를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반공산주의 선풍인 ‘매카시즘’에 비유했다. “아, 소련은 익명의 이름 없는 목격자로 재판을 했다. 매카시Ⅱ에 온 걸 환영한다.” 당연히 반발이 따랐다. 한 노르웨이 저널리스트는 “트럼프를 방어하기 위해 매카시즘을 언급한 것은 사실이나 역사를 무시한 것이다. 조지프 매카시의 오른팔 로이 콘은 트럼프의 가장 중요한 멘토였다”는 리트윗을 달았다.

트럼프의 최측근에서 경멸의 대상이 된 줄리아니의 추락과 변신을 두고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1993년 뉴욕시장 선거 캠프에서 줄리아니의 공보비서를 지낸 켄 프리드먼은 10월 7일 <뉴욕타임스> 기고 ‘루디 줄리아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에서 “9·11 이후 미국의 시장으로 불린 루디가 오늘 옹호할 여지가 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갈팡질팡하는 개인변호사이자 심복, 옹호자, 보호자”라고 줄리아니를 비판했다. 한 전직 백악관 고위관리는 “루디가 트럼프 머리에 똥을 쌌다”고 꼬집었다. 한 공화당 하원의원 보좌관은 그를 “멍청이”라고 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인 9월 18일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왼쪽 두 번째)을 안내하고 있는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오른쪽). 게티이미지

트럼프, “나의 로이 콘은 어디에 있나?”

지난 9월 20일, 미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나의 로이 콘은 어디에 있나?(Where‘s My Roy Cohn?)>(2019)라는 다큐멘터리가 개봉됐다. 이 다큐는 때마침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터지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로이 콘이라는 인물과 트럼프의 관계, 콘과 줄리아니의 비유 때문이다.

로이 콘(1927~1986)은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국 정치사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그와 관련된 유명인사는 조지프 매카시, 로널드 레이건, 로저 스톤, 도널드 트럼프 등이다. 특히 콘은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 광풍 때 무지막지한 집행자 역할을 했다. “당신은 지금 또는 과거에 공산당원인 적이 있나요?” 그가 한 말은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다. 그는 33년 전인 1986년에 사망했지만 트럼프의 등장으로 되살아났다. 악명 높은 변호사로 이름을 떨친 그는 뉴욕의 최고 유력인사이자 실세였다.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전략으로 유명하고, 권모술수에 뛰어났다는 평을 받았다. 20세에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21세 때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천재이기도 했다.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와 뉴욕 최고의 유력인사는 ‘멘티(트럼프)-멘토(콘)’로 만나 공생관계를 형성하면서 미 정치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큐멘터리 제목은 트럼프가 2017년 한 말에서 땄다고 한다. <애틀랜틱>에 따르면 2017년 5월 러시아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제임스 코미 당시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러시아 게이트 수사 중단을 요구한 트럼프의 말을 거부해 해임됐다. 그때 트럼프가 외쳤던 말이다. 당시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트럼프의 절박한 심경을 보여준다. 과거 콘이 그랬듯 지금의 위기에서 그를 구해줄 해결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트럼프가 27세, 콘이 46세 때인 1973년 인연을 맺었다. 당시 아파트 임대사업을 하던 트럼프는 흑인을 차별했다는 혐의로 법무부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트럼프는 당시 뉴욕 최고의 실세였던 전설적인 변호사 콘을 찾아 맨해튼의 회원제 나이트클럽 ‘르 클럽’으로 가 도움을 청한다. “정부가 우리 회사를 흑인에 대한 차별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트럼프를 처음 본 콘은 자신 있게 답한다. “그들에게 지옥에나 가라고 하고 재판정에서 그들에게 당신이 차별했다는 걸 증명하라고 하라.” 트럼프는 콘을 변호사로 기용했다.

임대사업에서 인종차별 사안의 핵심은 트럼프가 흑인에게 임대하지 않기 위해 유색인종을 뜻하는 C를 표기하는 식이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당연히 공정주거권리법 위반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적반하장격으로 오히려 법무부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1억 달러의 소송을 걸었다. 결과적으로 사건은 앞으로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준수하겠다고 합의하면서 트럼프는 유죄 인정 없이 사건을 해결했다.

트럼프는 왜 30여년 전에 숨진 로이 콘을 찾았을까? 트럼프가 콘 대신 찾으려고 했던 해결사가 줄리아니였을까? 줄리아니도 트럼프의 젊은 시절 콘이 했던 것처럼 대통령 트럼프의 변호인이 되려고 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