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단속 강화로 방위산업체·소프트웨어 기업·컨설팅업체·대학·연구소 등 이익 챙겨
미군이 2018년 11월 19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미-멕시코 국경 장벽에서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다. 미국의 국경안보 관련 산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단속 강화 정책에 따라 과거에 비해 급성장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단속 강화 정책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은 누굴까. 록히드마틴·보잉·레이시온·노스롭그루먼·제너럴다이내믹스 같은 미 5대 방위산업체는 물론 IBM·아마존·팰런티어 테크놀로지 같은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기업이 수혜자들이다. 매킨지 같은 세계적인 컨설팅업체나 톰슨로이터 같은 뉴스미디어기업, 대학과 연구소 등도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들은 국토안보부 산하 관세국경보호청(CBP) 및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최루탄·국경감시 장비에서부터 이민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불법체류자 체포 및 송환을 위한 소프트웨어 공급은 물론 이민당국의 예산 절감 및 송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컨설팅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과거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에 빗대 ‘국경산업복합체(Border-Industrial Complex)’로 불리기도 한다.
국경산업복합체의 등장은 전적으로 트럼프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당·공화당 행정부 할 것 없이 수십 년 전부터 이어진 관행의 결과다. 국경의 장벽이 높아지게 된 데는 두 개의 전환점이 있다. 하나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다. 그 결과 미-멕시코 국경은 이민자들에게 ‘죽음의 관문’이 됐다. 다른 하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1년 9·11 테러다. 국토안보부 신설을 통한 국경 집중 관리와 거대 기업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다.
불법체류자 체포·송환을 위해서라면…
#사례 1 2019년 8월 7일 ICE는 미시시피주 농촌지역의 7개 닭 가공공장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불법이민자 단속작전을 펼쳤다. 투입된 요원은 600명. 이들이 체포한 불법체류자는 680명이 넘었다. ICE는 작업자들을 일렬로 세운 뒤 체포할 사람을 골라냈다. ICE 역사상 최대로 불리는 단속작전에서 ICE는 어떻게 체포 대상자를 정확히 알 수 있었을까. 정확한 신분을 알려면 이름과 생김새, 어떤 차를 모는지, 언제 근무지에 도착하는지 등에 관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
궁금증은 두 달 뒤 <트루스아웃>의 보도로 풀렸다. 2019년 10월 5일 이 매체는 미국의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회사인 팰런티어 테크놀로지가 당시 단속작전에 활용된 소프트웨어를 ICE에 공급했다고 보도했다. 팰런티어가 ICE의 불법이민자 단속과 관련해 연관이 있다는 것은 이민자 옹호단체 ‘미헨테’의 폭로로 이미 알려진 바 있다.
<트루스아웃>에 따르면 팰런티어는 <뉴욕타임스>가 2018년 12월 불법이민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38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하자 해명하는 성명을 냈다. ICE에 지원한 기술은 불법체류자 송환이 아니라 범죄조사에 활용되는 기술이라는 내용이었다. ICE에는 범죄인 조사 업무와 관련이 있는 국토안보조사(HSI) 부서, 송환과 관련 있는 집행제거작전(ERO) 부서가 있다. 팰런티어는 성명에서 “우리는 ERO와 일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다.
<트루스아웃>은 “이것이 팰런티어가 정부의 범죄인 조사에 협력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전했다.
#사례 2 세계적인 미디어그룹 톰슨로이터가 불법체류자 체포와 관련한 데이터베이스를 ICE에 제공한 사실이 2019년 12월 22일 <인터셉트> 보도로 드러났다. ICE는 송환 대상 불법이민자를 추적하고 체포하기 위해 톰슨로이터의 CLEAR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특정 정보수집을 정부가 하지 못하게 한 조치를 피하기 위해서다.
ICE는 과거 본국으로 추방됐다가 재입국한 멕시코 출신의 ‘시드’라는 남성을 다시 체포하기 위해 CLEAR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한 살 때 미국으로 온 시드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물품을 훔친 혐의로 멕시코로 송환됐다가 다시 입국했지만 당국은 이를 몰랐다. 2018년 2월 22일 시드 추적에 나선 ICE는 시드의 페이스북 계정을 발견한 뒤 그의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CLEAR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ICE는 구글 맵을 활용해 시드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대조해 시드의 이름을 확인한 뒤 그의 페이스북을 감시하며 동태를 파악하다가 그해 5월 24일 그를 체포했다. 그는 2019년 1월 불법 재입국 혐의로 21개월형을 선고받았다. 형이 종료되면 멕시코로 다시 추방된다.
톰슨로이터 계열사인 로이터통신 기자들은 톰슨로이터가 ICE와 맺은 2000만 달러짜리 CLEAR 사용 계획이 “로이터라는 이름이 정부의 스파이를 연상시킨다”고 비판했으나 톰슨로이터 경영진들은 뉴스 파트와 정보수집 분야는 완전히 분리된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인터셉트>는 전했다. 코넬 공대의 감시 전문가 새러 빈센트는 “시드의 사례처럼 사람에 대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은 ICE 감시망에 걸리는 이민자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인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사례 3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트럼프의 불법이민자 단속 강화 조치에 따른 국경 수용시설 확충과 이민요원 1만 명 확충 지시에 따라 ICE로부터 컨설팅을 의뢰받았다. <뉴욕타임스>의 2018년 7월 보도에 따르면 계약 규모는 2000만 달러가 넘는다. 매킨지 측은 이민정책을 개발·조언·이행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프로퍼블리카>가 정보공개법(FOIA)을 통해 입수한 자료와 인터뷰를 보면 트럼프의 이민 단속 정책 수행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트루스아웃>이 2019년 12월 8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매킨지는 수용자 음식의 질을 낮춰 예산을 절감하는 방안과 송환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ICE에 제시했다. ICE 대변인 브라이언 콕스는 “매킨지의 컨설팅은 불법체류자를 송환하는 데 시간을 줄이는 것을 포함해 임무의 결과에서 주목할 만한 개선을 거뒀다”고 말했다. 매킨지는 또 ICE 수용시설의 기준을 낮춤으로써 예산을 절감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ICE는 매킨지의 컨설팅에 따라 수용시설 운영비용 등 1600만 달러를 절약했다고 <트루스아웃>은 전했다.
국토안보부 감사관은 2019년 여름에 발행한 보고서에서 수용자를 위한 음식의 질과 ICE 수용시설의 유지비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매킨지와 ICE 계약은 2018년 7월에 종료됐지만 매킨지는 ICE와의 계약 만료 1주일 뒤 CBP와 2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그 후 2020년 9월이 만료인 840만 달러짜리 계약도 맺었다.
국제싱크탱크 ‘트랜스내셔널 인스티튜트(TNI)’가 2019년 9월 16일 펴낸 ‘장벽 그 이상’ 보고서에 첨부한 국경산업복합체의 급성장을 보여주는 그래픽. / TNI 웹사이트
‘경이로운’ 국경산업복합체의 실체
진보 성향의 비영리 국제싱크탱크 ‘트랜스내셔널 인스티튜트(TNI)’가 2019년 9월 16일 펴낸 ‘장벽 그 이상(More than a wall)’ 보고서는 급성장하고 있는 국경안보산업과 그 결과로 구축된 ‘국경산업복합체’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국경·이민 관련 미 정부의 예산과 인력은 급증했다. 1980년 예산은 3억5000만 달러였다. 1990년 12억 달러로, 2005년 102억 달러로 커지더니 2018년에는 237억 달러로 치솟았다. 1980년에 비하면 약 68배나 성장했다. 전 세계 국경안보 시장 규모도 마켓앤드마켓 추정에 따르면 2022년까지 529억5000만 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루스아웃>은 2019년 10월 5일 분석기사에서 2011년 3050억 달러였던 국경안보 산업 규모가 2023년까지 740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소개했다. 국경·이민 관리 인력도 1994년 4000명에서 2만1000명으로 증가했다.
ICE·CBP·해안경비대 등 이민당국이 관련 기업체와 맺은 계약도 급증했다. 2006~2018년 총 계약 건수는 34만4000여 건, 액수는 805억 달러다. 그 가운데 ICE는 3만5000여 건·182억 달러, CBP는 6만4000여 건·270억 달러, 해안경비대는 24만5000여 건·352억 달러다. CBP 계약만 보더라도 방위산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만 최소 14개, 대학 10곳, 연구소 2곳이 관련돼 있다. CBP의 계약 건수와 액수는 2009년 록히드마틴과 9억4500만 달러 규모의 P-3 정찰기 16대 도입 계약을 맺으면서 증가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 계약은 1975~1978년 국경·이민 당국의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CBP는 2017년에 대학 및 연구소와 총 1억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이 가운데 9000만 달러는 연구개발비 명목이었다. 이는 난민을 위한 인도주의 단체에 지원하는 규모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다. 2016년 미 보건부 난민재정착국이 9개 비영리단체에 지원한 액수는 1490만 달러였다.
이 같은 기업체와의 계약은 국경산업복합체를 강화하는 촉매제가 됐다. 보고서는 미 워싱턴에 있는 비영리 연구기관인 대응정치센터(CRP)가 운영하는 ‘오픈시크리츠닷오르그’ 자료를 인용해 “거대 국경안보 기업은 미 하원 운영위원회 및 국토안보위원회 위원들의 정치자금 기부의 큰손이었다”고 지적했다. 2006~2018년 록히드마틴·제너럴다이내믹스·노스롭그루먼·레이시온·보잉 등 미 5대 방위산업체는 총 2760만 달러를 하원 운영위 위원들에게 제공했다. 2017~2018년 하원 운영위에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기부한 5대 방위산업체를 비롯한 7개 기업은 모두 CBP의 계약을 따냈다. 2006~2018년 5대 방위산업체가 하원 국토안보위 위원들에게 기부한 정치자금은 모두 650만 달러다.
국토안보부에 대한 로비도 활발했다. 2002~2019년 국토안보 관련 로비 목적으로 국토안보부를 방문한 사례는 약 2만 건이다. 2003년 385명·637건에서 2018년에는 677명·2841건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이 같은 로비의 대표적인 결과가 2018년 3월 23일 대통령이 서명한 국토안보예산법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는 미 역사상 가장 큰 국경·이만 관련 예산으로, CBP와 ICE 예산만 230억 달러가 넘는다. 이 법안 로비를 위해 제너럴다이내믹스는 44차례, 노스롭그루먼은 19차례, 록히드마틴은 41차례, 레이시온은 28차례 국토안보부를 찾았다.
2005년부터 열리는 국경안보엑스포는 국경안보 산업계와 국토안보부, CBP, ICE 관리들이 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다. 2012년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열린 엑스포에서 국경순찰대원 펠릭스 차베스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2004년 이래 우리가 취득한 능력은 경이롭다”고 말했다. 잦은 로비는 자연스럽게 ‘회전문 인사’로 이어졌다. 2006년부터 2019년 7월까지 177명의 국토안보부 관료들이 해당 기업이나 로비업체로 가거나 관련 컨설턴트·전략가로 자리를 옮겼다. 이 가운데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국토안보부 장관을 지낸 마이클 처토프를 비롯한 장관 3명과 CBP 청장을 지낸 이가 최소 4명 들어 있다. 2003~2005년 초대 CBP 청장을 지낸 로버트 보너는 워싱턴 소재 국토안보 기업 센티널 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CBP는 2010년 센티널과 48만 달러짜리 5년간 전략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과거 군산복합체처럼 강력한 국경산업복합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라면서 “트럼프의 당선은 이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CBP 예산은 2017년 144억 달러에서 2019년 170억 달러로, 26억 달러 증가했다. ICE 예산도 같은 기간 약 20억 달러 늘었다. 보고서는 또 국경산업복합체의 성장은 미국으로 오려는 이민자들에게 목숨 건 입국을 강요하면서 이들의 생명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토드 밀러는 “국경안보 관련 거대 기업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입법 및 행정에 관한 전략적 입장뿐만 아니라 주요 미디어 입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서 “이민에 대한 미국의 전략을 바꾸려면 국경산업복합체의 현실을 직면해 정치와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을 제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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