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무는 궁금증들… 결국은 중동 석유·패권 둘러싼 미-이란 간 대결
이라크 방문차 왔다가 1월 3일(현지시간) 수도 바그다드 공항 인근에서 미국의 드론 공습으로 피살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그의 죽음으로 미-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 AP연합뉴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새해 벽두인 1월 3일(현지시간) 미국의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제거로 세계에 전운이 드리워지면서 드는 의문이다. 되돌아보면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 과정은 궁금증투성이다. 솔레이마니 제거는 우발적인가, 아니면 잘 짜인 각본에 의한 것인가. 우발적인 게 아니라면 미국의 노림수는 무엇인가. 탄핵 위기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심 돌리기인가, 아니면 중동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가치인 석유 장악 의지를 적대국에 보낸 경고인가. 솔레이마니 제거 결단은 트럼프의 독자적인 판단인가, 아니면 대이란 강경주의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작품인가. 암살 위협에 늘 노출돼 왔던 솔레이마니는 왜 공개적으로 이라크에 갔으며, 미국은 왜 ‘지금’ 그를 제거했을까. “솔레이마니 제거가 미국인의 목숨을 구하고 이란을 저지할 것”이라는 트럼프의 말은 사실일까. “임박한 위협”의 실체는 있는 걸까, 아니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 명분으로 내건 대량학살무기(WMD)와 같은 거짓말일까.
이란은 예고한 대로 1월 8일 이라크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대칭적’ 보복 공격을 감행했고, 일단 미국이 군사적 대응을 자제함으로써 두 나라 모두 사태 악화 방지에 애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나라의 위기관리가 실패할 경우 상황이 악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그다드 미 대사관 시위가 ‘게임 체인저’?
트럼프는 왜 솔레이마니 제거 명령을 내렸을까. 이 의문을 풀려면 솔레이마니가 죽기 직전 긴박했던 이라크 상황을 되돌아봐야 한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해 12월 27일 이라크 민병대의 키르쿠크 공군기지 공격이 “트럼프로 하여금 뭔가를 해야만 하게 만들었다”고 1월 3일 말했다. 그날 이라크 키르쿠크 외곽에 있는 미-이라크 군 기지에 로켓포 30발이 떨어져 미 민간인 계약자 1명과 미군 여러 명이 다쳤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공격 이틀 뒤인 12월 29일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대책 마련을 위해 트럼프가 휴가차 머물고 있는 플로리다의 머라라고 리조트로 날아갔다. 트럼프는 전날 2명의 국방부 관계자로부터 이라크 상황에 대처할 옵션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옵션에는 이란 선박이나 미사일 기지,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에 대한 공격과 솔레이마니에 대한 살해도 포함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트럼프의 선택은 솔레이마니 제거가 아니었다. 미 국방부는 이날 12월 27일 미사일 공격의 배후로 지목한 이라크 내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가 장악하고 있는 이라크와 시리아 내 5곳의 무기고와 지휘부를 공습했다. 이 공습으로 20명이 사망했다.
미국의 공습은 엄청난 반발을 불렀다. 분개한 이라크 시아파 수천 명은 이틀 뒤인 31일 바그다드 미 대사관로 몰려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폼페이오를 비롯한 미 고위 당국자들을 2019년 마지막 날 새벽부터 긴장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날 새벽 4시 폼페이오는 긴급 전화를 받았다. 30분 뒤 폼페이오는 전화로 에스퍼 장관, 밀리 합참의장, 매튜 튤러 이라크 주재 미 대사와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바그다드 미 대사관 시위가 ‘게임 체인저’가 된 순간이었다.
미국은 자국 대사관 공격에 대한 악몽이 있다. 1979년 11월 이란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습격으로 자국민 52명이 인질로 잡혔다가 444일 만에 풀려났다. 2012년 9월에는 리비아 벵가지 미 영사관이 과격 시위대와 무장 단체의 공격을 받아 리비아 주재 미 대사를 비롯해 4명이 사망했다. 바그다드 미 대사관 시위가 벵가지 영사관 공격의 재연이 될까 우려한 트럼프는 더 이상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했다. 그의 선택은 솔레이마니 제거였다. 트럼프가 솔레이마니 살해를 선택했을 때 군 고위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으며, 이란의 보복 공격 가능성에 불안해 했다. 트럼프의 결정에 밀리 합참의장이나 에스퍼 장관이 밀어붙였는지는 불확실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 이후 미 특수전사령부는 군과 정보당국을 동원해 솔레이마니를 제거할 기회를 찾았다.
솔레이마니는 왜 바그다드로 갔을까
아델 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는 1월 5일 솔레이마니가 살해된 아침에 이라크가 중재하고 있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외교관계 회복을 논의하기 위해 그를 만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가 바그다드 미 대사관에 대한 공격을 중지해달라고 전화로 요청해 시아파 민병대 및 이란 측과 접촉해 해결하자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했다. 독립 뉴스 웹사이트 <그레이존>도 6일 솔레이마니는 미 목표물을 공격할 계획이 아니라 사우디와의 군사적 긴장을 단계적으로 축소에 대해 협의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도착했다면서 그는 사실상 평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시각은 다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1월 2일 오후 5시쯤 솔레이마니 제거 명령을 승인했다. 판단 기준은 누가 바그다드 공항에서 솔레이마니를 영접할 것인가였다. 미국과 협력하는 이라크 관계자를 만나면 공격 명령은 취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솔레이마니가 만난 인물은 ‘명백한 문제 인물’인 카타이브 헤즈볼라의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부사령관이었다. 그래서 제거했다는 게 일관된 미국의 입장이다. 트럼프는 7일 “그들은 휴가계획 때문에 만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에스퍼 국방장관도 “솔레이마니는 바그다드에 미국에 대한 추가 공격을 협의하기 위해 있었다”면서 “그가 정당한 목표물이 아니었다는 말이 있는데, 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 정보당국은 당시 솔레이마니의 공격이 임박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와 솔레이마니 사이의 교신 내용을 분석한 결과 아야툴라가 공격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승인하지 않은 점 때문이다. 영국 신문 <가디언>도 1월 6일 솔레이마니가 바그다드를 방문하는 것이 위험할 것이라고 이라크가 생각할 만한 것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솔레이마니를 유인했을 수도, 트럼프가 솔레이마니가 사우디와의 관계개선 시도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몰랐거나 또는 알았지만 무시했을 수도, 미군 측이 트럼프와 이라크 총리 간 대화 내용을 몰랐을 수도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줄곧 “임박한 위협”을 강조해온 폼페이오조차 7일 “솔레이마니가 이미 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며 사실상 철회했다.
이라크와 미국의 말 가운데 누가 옳은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더욱이 중동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이란과 사우디 간의 대화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영국의 안보분석가 로버트 에머슨은 <가디언>에 “이란과 사우디 간 협상은 흥미진진하다”며 “더 상세한 내용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으로서는 솔레이마니를 제거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미국 측은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에서 급조폭발물(IED)로 미군 600명을 죽였다고 주장한다. 또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2011년 철수할 때까지 이라크 내의 반미 반란을 부추긴 주동자여서 미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다. 하지만 다른 평가도 있다. <인터셉트>와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11월 이란정보안보부(MOIS) 관계자로부터 입수해 폭로한 자료를 보면 솔레이마니는 이라크 현안에 대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스라엘 정보당국도 솔레이마니에 대해 “대담하고 재능 있는 사령관”으로 평가하고 있다.
‘딥스테이트’ 블로그를 운영하는 언론인 제퍼슨 몰리는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이유로 “그가 중동지역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확대한 인물”이라는 점을 들었다. 그는 “솔레이마니는 이란 정부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지역의 대리인을 활용하거나 정치적 연합, 부인하는 공격, 선택적인 테러행위 같은 비대칭적 전쟁의 기술을 완벽히 해냈다”면서 “이러한 성공이 미국과 이스라엘, 사우디를 실망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미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은 <카운터펀치>에 “중동 석유를 장악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된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대이란 강경정책을 펴온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 AFP연합뉴스
이란 강경주의자 폼페이오의 작품?
트럼프의 솔레이마니 제거 결정에는 폼페이오의 역할이 컸다고 미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폼페이오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미 행정부 내의 대표적인 이란 강경주의자로 꼽힌다. 폼페이오가 그동안 펼친 대이란 강경정책마다 그의 입김이 묻어 있다.
<뉴리퍼블릭>은 “1년여 이상 폼페이오는 트럼프와 국방부에 이란에 대해 전례가 없는 충격적인 강경책을 하도록 이끌었다”면서 “폼페이오가 최고위 외교관이 아니라 안보를 책임지는 총독처럼 행동해 왔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4월 이란의 정규군인 혁명수비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것은 국방부가 아니라 폼페이오와 국무부가 주도했다. 당시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은 “혼란을 낳고 성급한 과정”이라고 비판했다. 5월에는 폼페이오와 국무부는 의회를 우회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에 80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판매했다. 6월 오만만에서 일어난 일본 유조선의 선체부착폭탄에 의한 공격을 이란의 소행이라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비난했다. 트럼프가 당시 국방장관대행을 맡고 있던 패트릭 섀너헌에 대한 지명을 철회한 6월 18일에는 국방부의 지도부 공백 허점을 활용해 플로리다주 템파에 있는 미 중부사령부 및 특수전사령부를 방문했다. “국무부와 국방부가 전반적인 현안에 대한 심도 있는 협의를 위해서”가 이유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6월 20일 미 드론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영공침해 이유로 격추됐을 때 폼페이오는 트럼프에게 보복 공격을 강요했다. 트럼프가 실행 10분 전에 취소하자 그는 “시무룩해 했다”고 한다.
<폴리티코>는 1월 6일 폼페이오를 “그림자 국방장관”으로 묘사했다. 국무장관이 국방장관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의미다. 폼페이오는 솔레마이니 제거 이후 백악관의 요청에 따라 일요일 주요 TV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트럼프를 적극 방어했다. 반면 에스퍼 국방장관이 솔레이마니 제거 전날인 1월 2일 “미국은 미군 보호를 위해 선제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1월 6일 “이라크에서 미군 철수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일요일 TV 대담에 폼페이오가 나온 것에 대해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고 협상의 여지를 갖기 위해 폼페이오를 선택했다”면서 “에스퍼 국방장관은 정치와 거리를 두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국방부 주변의 시각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국제안보 전문가 톰 라이트는 “폼페이오는 국가안보팀에서 최강이며, 다른 이들은 그를 따른다”면서 “권력의 핵심에서 그의 경쟁자는 없다”고 말했다.
폼페이오가 이란에 집착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종교적으로 이슬람 이란과 대결해야 한다는 복음주의 신념과 국내 정치적 이유다. <워싱턴포스트>는 “(폼페이오의) 이란에 대한 과격한 입장은 공화당 내에서 중요한 두 개의 친 이스라엘 지지층인 보수 유대인 기부자들과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폼페이오는 상원의원 출마를 포기했지만 차차기 대선(2024년)의 유력한 공화당 후보다.
폼페이오의 영향력이 큰 것은 그에 대한 트럼프의 전폭적인 신뢰 덕분이다. 이를 바탕으로 두 사람은 ‘찰떡궁합’을 과시해왔다. 트럼프는 2018년 <뉴욕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폼페이오를 제외한 모든 사람과 언쟁을 한다. 나는 폼페이오와는 언쟁거리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도 트럼프와의 관계에 대해 “나는 우리의 외교·경제·군사적 모든 캠페인과 관련해 모든 전략적 계획 과정을 통해 트럼프와 함께하고 있다”고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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